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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10월 넷째주

입력 | 2004-10-24 20:59:00

국산 담배를 애용하자는 캠페인이 1950년대 중반 서울시청 앞에서 열렸다. 당시 ‘양담배’ 등 사치품은 대부분 외제였기에 사치풍조 척결은 곧 국산품 애용으로 통했다. -자료:‘사진으로 보는 서울’


官은 ‘戰時生活’이 싫어?…‘强調週間 設定’을 次官會서 否決

‘전시생활체제 확립강조’ 운동이 한낱 구호운동이 되고 있다. 사회부에서는 二十五일부터 一주일간을 ‘전시생활체제 확립주간’으로 설정하고 (一)국민사기 앙양 (二)국토미화운동 (三)관습 시정 (四)물자 절약 (五)국산 애용 (六)사치품 배격 (七)요식업태의 단속 등 실천사항을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사숙녀의 몸단장이나 상점에 있어서의 물품 진열, 그리고 밤거리 풍경, 음식점에 있어서의 낮술, 고급관리 가정생활 등을 살펴보면 구태의연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원래 사회부에서는 ‘전시생활 간소화주간 설정’의 건을 차관회의에 부의 상정했던 바 이 회의에서 부결됐던 것이라고 한다.

구호만 난무했던 “사치하지 맙시다”

3년여에 걸친 6·25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땅. 휴전은 됐지만 당시 대한민국은 맨손에서 출발해야 하는, 전시(戰時)나 별 다름 없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잘 나가는 사람은 있었다. ‘열전’은 끝났다는 안도감이 돌면서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치와 향락 풍조가 대두돼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것. 국민 대부분이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대빈곤’ 속에서의 사치. 그저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경제여건과 국민정서가 너무 나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국토재건과 국산품 애용을 부르짖으며 전시생활체제 확립운동을 시작했다.

1952년 제정된 전시생활개선법령이 절실한 당면 과제로 재강조됐다. “당신의 차림은 전시생활에 맞습니까”, “당신의 사치가 통일을 저해합니다”, “얼굴의 화장보다는 마음의 무장이 중요합니다”라는 구호가 다시 길거리에 넘쳐났다. 하지만 유흥과 사치의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증가 일로였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1954년 4∼9월의 사치품세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7배나 늘었고 요정 등에 부과된 유흥음식세는 전년 동기 대비 4배나 되었다.

잘 먹고 잘 입고 싶은 것은 모두의 소망이다. 강요하고 계몽한다고 해서 억누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위 기사에서처럼 당시 정부의 전시생활 운동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밑바닥 심성과 여론을 도외시한 관(官) 주도의 정책 또는 캠페인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그것이 권력자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