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2차전이 열린 22일 수원구장. 야구로 밥을 먹고사는 기자도 잠시 헷갈렸다. 현대와 삼성이 8-8로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정규이닝이 종료된 시간은 오후 10시13분. 으레 연장전이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한 게 착각이었다.
이날 경기 개시 시간은 정규시즌보다 28분이 빠른 6시2분. 야간경기는 6시30분에 시작해 10시30분까지 한다는 고정관념이 앞섰던 것. 또 올해부터 주야간 경기를 막론하고 4시간이 넘으면 새로운 이닝에 들어갈 수 없도록 바뀐 무승부 규정을 깜빡했던 것이다.
사흘 후인 25일 대구구장. 이 경기는 연장 12회까지 갔음에도 0-0의 팽팽한 투수전이 되는 바람에 경기 시간은 3시49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엔 연장 12회 이닝 제한에 걸려 무승부가 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모든 걸 메이저리그를 본뜨면서도 미국에선 없는 무승부 규정을 올 들어 더욱 강화하고 승차제까지 도입한 이유는 경기 진행을 빠르게 하고 선수보호 및 공격야구를 유도한다는 취지. 그러나 이는 구호에만 그쳤을 뿐 실효는 없었다.
승차제에서 패배나 다름없는 무승부가 무서워 경기가 빨라졌다는 통계는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또 최근 들어 심화된 다 득점 야구는 투수진의 붕괴에서 비롯됐다는게 기자의 판단이다.
그나마 4시간 넘게는 경기를 하지 않으니 선수들이 상대적으로 피곤함은 적었을 터. 그러나 이는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이기거나 또 지더라도 밋밋한 무승부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이긴 보스턴이나 진 뉴욕 팬 모두 연일 자정을 넘겨서까지 경기가 계속되는데도 그토록 열광했던 것은 연장전에서 명승부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이참에 KBO에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국내 여건상 정규시즌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포스트시즌만이라도 무승부 규정을 완화하든지 아예 없애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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