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연기획사 C사는 11월 2일로 예정됐던 세계적 피아니스트 머레이 페라이어의 내한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연주자의 손 염증.
클래식 음악계에서 연주자의 신체 이상으로 인한 공연 취소는 다른 장르보다 잦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초프스키도 2001년 12월 내한공연 때는 독감에 걸려 공연을 예정보다 한달 늦춰 2002년 1월에 해야 했다.
전 뉴욕필 상임지휘자인 쿠르트 마주어는 2001년 이틀 일정으로 뉴욕 필 내한공연을 지휘하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가 둘째 날 공연에 돌연 ‘결장’했다. 그는 그 직후 독일에서 신장이식수술을 받았다.
최근 국립오페라단은 거듭 홍역을 치렀다. 9월에 공연한 정명훈 지휘 오페라 ‘카르멘’ 출연진 중 주요 배역 세 명이 각각 신장결석, 다리뼈 골절, 청각 이상으로 교체됐던 것. 10월 이 오페라단이 공연한 ‘아이다’에서도 남자주역 라다메스 장군 역으로 출연할 예정이던 아르메니아인 테너 게감 그레고리안이 갑작스레 심장이상을 일으키는 바람에 테너 김남두 하석배씨의 더블 캐스팅으로 공연을 치렀다.
음악계에서는 클래식 음악 연주가들의 공연 취소가 잦은 이유를 ‘최상의 컨디션에서만 무대에 설 수 있도록 다듬어진’ 클래식 장르 고유의 특징 때문으로 설명한다. 19세기 ‘명인 연주가’ 시대가 개막되면서 기악 분야에서는 어려운 기교를 자랑하기 위한 경쟁이 거듭됐고, 성악가들은 큰 성량(聲量)을 과시하게 된 결과 클래식은 100%의 육체적 컨디션이 갖춰지지 않고는 무대에 설 수 없는 장르가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스타들의 갑작스런 ‘결장’은 신인 발굴의 뜻하지 않은 통로가 되기도 한다.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1923∼1977년)는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 오페라극장의 프리마돈나였던 레나타 테발디가 1950년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 출연을 취소하자 대역으로 무대에 올랐다가 그 숨은 재능을 드러냈다. 2002년에는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대타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맡았다가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