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로플린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사진)이 24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의 대학과 과학은 어떨까. 그와 e메일 인터뷰를 했다.
로플린 총장은 기본적으로 대학이나 과학에 대해 정부가 깊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개입으로 인한 발전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약한 자가 경쟁에서 도태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 시절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지만 나중에 두각을 나타낸 인물들을 많이 보았다며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교육인적자원부의 ‘3불(不)정책’(고교간 학력차 반영, 본고사, 기여입학제 허용 불가)을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
“정부는 일반적으로 간섭을 한다. 그것을 간섭으로 이해할지 않을지는 그 나라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미국의 경우 대규모 공립대 등은 정부가 입학요강을 정하지만 스탠퍼드대 같은 사립대학은 그들만의 입학 요강을 갖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의 교육 쟁점 가운데 하나는 고교간 학력차 반영이다. 이에 찬성하나. 미국에선 어떤가.
“문화적 특성이 강한 문제여서 외국인으로서 논평하기 어렵다. 미국의 경우 부모의 소득차 등으로 고교간 격차가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등급제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사회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
―고교간 학력차 반영은 근본적으로 고교평준화 정책 때문에 생겼다. 평준화 정책은 바람직하다고 보나.
“이 문제도 답변이 쉽지 않다. 한국에서 고교 체제는 독자적으로 잘 발전해 왔다. 미국에서는 많은 고교가 공립학교를 마다하고 영국모델을 따라 사립 예비학교로 전환한 뒤 프린스턴, 하버드, 예일대 등 명문대에 많은 합격생을 내고 있다. 어떤 식이든 일정한 조건을 정해놓은 교육체제는 단지 어느 수준까지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을 뿐이다.”
―고교 등급제로 서울의 강남권과 비강남권간에 일고 있는 논쟁에 대한 생각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간의 논쟁으로 보인다. 고교 시절을 근거로 누가 가치 있는 시민이 될 것인지 판단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인간을 닮은 화석 ‘루시(Lucy)’를 발견한 아프리카의 영재학생 돈 조핸슨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대학에 갈 계획조차 없었다고 했다. 나는 중국이나 다른 지역의 그런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정부가 과학기술계에 대한 연구지원 등을 늘리려 한다. 유의할 점이 있다면….
“정부는 프로젝트를 발주하는 기관과 해당 교수(또는 대학) 사이에서 사업계약을 주선한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래야 교수나 대학이 연구 결과물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 가질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KAIST는 지적재산권을 학교나 교수가 소유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꿔 나가고 있다.”
―과학 올림피아드 수상자들이 의대로 대거 진학하고 있다. 어떻게 보나.
“정부 지원금이 어떻게 잘못 사용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산업을 위해 과학고에 보조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그 보조금이 의료계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KAIST가 정부의 지원에 비해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지적이 맞다. 그래서 바꾸려고 한다. 교내 경쟁을 독려하는 한편 파괴자(잘못된 정부 정책이나 관습 등)로부터 학문 전통을 보호하는 데도 힘쓰겠다. 12월 중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한 KAIST 입시정책이 나올 것이니 기대해도 좋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한글을 익힌다고 들었다.
“오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결재와 직원면담, 강의 등으로 바쁘다. 이른 새벽과 늦은 밤 4시간 이상을 e메일 답변에 쓴다. 틈틈이 한국어 독본으로 공부한다. 한글은 위대한 발명품이다. 독창적이고 배우기 쉽다. 한글날을 국경일로 삼아도 좋을 것 같다.”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