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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리더십]“리딩뱅크 내 손 안에 있소!”

입력 | 2004-10-26 16:39:00


《국내 은행업종에서 ‘3차 빅뱅’이 시작될 조짐이다. 국내 은행권은 외환위기 직후 부실은행 퇴출, 부실은행간 합병 등 혹독한 구조조정(1차 빅뱅)을 치렀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덩치 키우기 경쟁(2차 빅뱅)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가장 먼저 옛 국민은행과 옛 주택은행은 통합해 새로운 국민은행으로 거듭났다. 또 우리은행과 평화 광주 경남은행은 우리금융지주라는 간판 아래 하나로 묶였다. 하나은행과 서울은행,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의 합병도 성사됐다.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한미은행의 합병 법인인 한국씨티은행은 11월 출범한다. 이제 은행권은 질적 경쟁을 통해 진정한 리딩뱅크(선도은행)를 가리는 ‘3차 빅뱅’을 앞두고 있다. 선두권 은행들의 리딩뱅크 전략과 이를 주도하는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을 집중 분석한다. 행장이 교체될 예정인 국민은행은 분석에서 제외한다.》

▼우리은행 황영기 행장▼

“CEO는 검투사와 같다. 지면 죽는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기려면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프로가 돼야 한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의 좌우명이다.

‘최고’와 ‘처음’을 좋아하지 않는 CEO야 없겠지만 황 행장의 ‘엘리트주의’는 추진력과 자신감 면에서 유별나다.

한 예로 올 추석 연휴기간에 2년9개월 동안 2000억원을 들여 준비해온 국내 은행권 최대 규모의 전산시스템 교체작업을 단행했다. 전산 분야에서 다른 은행을 2, 3년 앞서가기 위한 것이다.

황 행장은 전산시스템 개선으로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지주 산하 다른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금융상품 개발에 드는 시간이 2, 3개월에서 일주일 이내로 단축되고 고객 정보가 통합 운영돼 맞춤형 상품 개발도 쉬워진다는 것.

그는 11일 열린 10월 월례조회에서 “은행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육성하는 인사제도를 조만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무능한 고참이 유능한 신참 밑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했다.

하지만 황 행장이 은행 경영의 모든 것을 ‘시스템 개혁’이라는 냉정한 시각에서 접근한다고 보는 것은 속단이다.

은행권의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기피 관행이 사회문제로 떠오른 8월 말 국내 최초로 110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 지원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중소기업 기술력 평가 자문단’을 구성한 것은 기업금융 비중이 높은 우리은행의 현실에 기반을 둔 역발상이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하나은행 김승유 행장▼

1997년부터 하나은행을 이끌어온 김승유 행장은 대표적인 ‘장수(長壽)’ 은행장이다.

행원들이 ‘영원한 하나인’이라는 별명을 붙일 정도로 하나은행의 브랜드와 김 행장의 이름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최근 국민은행장 하마평에 오르내렸을 때도 주위 사람에게 “나에게서 하나은행을 빼면 남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는 후문.

김 행장의 CEO 브랜드 파워는 하나은행 주가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하나은행 주가는 지난해 9월 말 1만5000원에서 올해 9월 말에는 2만7000원으로 뛰었다.

김 행장의 경영 특징은 스피드. 2002년 서울은행을 합병할 때는 물론 지난해 ‘SK글로벌 사태’ 때도 우물쭈물하는 일 없이 기민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행장은 리딩뱅크의 조건으로 ‘규모’도 중요하지만 은행업의 기본에 충실할 수 있는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리스크 관리, 자산 관리 등에 대한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규모가 확대되면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

김 행장은 기본적으로 구성원들의 의식에서 실력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직원 명부를 항상 갖고 다닌다. 하나은행은 2005년 자산 기준 세계 100대 은행, 2006, 2007년에는 기본자본 기준 세계 100대 은행, 2009년에는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0대 은행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신한은행 신상훈 행장▼

신한은행 직원에게 주는 보너스 하나. 사석에서 신상훈 은행장을 ‘행장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형님’으로 불러보라. 신 행장은 “그게 더 정겹다”고 환영할 것이다.

‘리더란 전략이나 기획의 천재가 아니라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마치 맏형 같은 사람’이라는 그의 리더관(觀)을 감안할 때 농담은 아닌 듯하다.

그는 36년 동안 은행원 생활을 한 끝에 2003년 3월 신한은행장에 취임했다. 은행원에서 출발해 은행장에 오른 드문 케이스다.

신한은행 창립 멤버로 일선 영업점, 국외 점포, 본부 부서 등을 두루 거치면서 체득한 신 행장의 경영철학은 자연히 신한은행의 이미지와 부합한다.

창립 22년 만에 리딩뱅크 지위를 넘보고 있는 것도 사람을 중시하는 은행 기풍과 무관하지 않다. 사람을 중시하는 문화는 대외적으로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은행 부실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 대내적으로는 응집력 있는 안정된 직장을 만들었다.

신한은행을 포함한 신한금융지주는 월스트리트저널이 9월 말 발표한 ‘세계 100대 금융회사’ 가운데 93위에 올라 국민은행(83위)과 함께 한국 대표 금융회사가 됐다.

신한은행의 목표는 2008년까지 명실상부한 한국 리딩뱅크가 되는 것. 2006년으로 예정된 조흥은행과의 통합을 발판으로 종합서비스은행으로 거듭날 계획이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한미은행 하영구 행장▼

11월 1일 출범할 한국씨티은행의 은행장으로 내정된 하영구 한미은행장은 2001년 ‘최연소 은행장’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48세 때 한미은행장이 됐고 지금도 5대 시중은행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적다.

하 행장은 최근 “(씨티은행과의 통합으로) ‘틈새 은행’의 개념에서 졸업했다”며 “우리의 전략은 리딩뱅크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7% 수준인 시장점유율을 수년 내 10%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통합 은행장으로서의 첫 시험대였던 올해 한미은행의 파업은 특유의 뚝심과 추진력으로 무난히 통과했다는 평가다. ‘원칙에 충실하자’는 하 행장의 좌우명은 파업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은행 사상 최장기간(18일) 파업이었지만 하 행장은 원칙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경영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금융권 관계자들의 평가도 긍정적이다.

리딩뱅크 경쟁에 나서는 은행장이 가져야 할 리더십에 대해 하 행장은 합리성, 선택과 집중을 통한 빠른 의사 결정, 통합 후 조직과 직원의 화학적 결합 등을 꼽았다. 화학적 결합은 통합 씨티은행의 최대 과제다. 씨티의 글로벌 경쟁력과 한미의 국내 영업망이 기대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두 은행 직원들의 통합이 제대로 이뤄지느냐에 달려 있다.

하 행장은 가능한한 많은 직원과 대화하기 위해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점심, 저녁을 직원과 함께 먹는다. 영업점 직원을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저녁 미팅도 하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