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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곤교수의 Really?]주차 힘들지만 車빼기 쉬운 이유는

입력 | 2004-10-26 18:20:00


쌀과 콩을 섞어 그릇에 담고 흔들면 쌀보다 큰 콩이 위로 올라오게 된다. 또 과자를 먹다 보면 과자 봉지 맨 밑에 과자 부스러기가 쌓여 있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한편 차들이 일렬로 서 있는 사이에 주차할 때 틈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가 밖으로 나올 때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같은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쌀과 콩을 섞어놓은 것처럼 크기가 다른 물체들이 흔들리면 쌀 사이의 틈이 좁아지거나 넓어지게 된다. 이때 통계적으로 보면 넓은 틈이 생기는 것보다 좁은 틈이 생길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통을 흔드는 동안 작은 쌀알들은 좁은 구멍을 통해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이에 비해 콩알만 한 구멍이 생길 가능성은 매우 적기 때문에 결국 콩은 위쪽으로 밀려 올라간다. 과자봉지도 흔들어 주면 같은 이유로 부스러기가 밑으로 내려간다.

주차할 때는 틈 안으로 들어가서 예쁘게 주차할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에 비해 틈 안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의 가짓수가 훨씬 많다. 따라서 주차하려고 들어갈 때는 별로 많지 않은 가능성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지만, 나올 때는 선택할 경로와 방법의 수가 더 많기 때문에 훨씬 쉬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 ‘경우의 수’가 많은 사건이 적은 사건보다 잘 일어나게 된다. 이와 달리 주사위를 던지거나 로또복권 공이 나올 때는 결과들이 같은 확률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한 번호가 다른 번호보다 많이 나오는 일은 없다.

일상생활에서 겪는 이런 경험들은 사실 물리학에서 관심을 갖는 연구주제의 하나다.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의 수를 물리학에서는 ‘엔트로피(무질서도)’라고 한다. 세상의 복잡한 현상들은 결국 마지막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 쪽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런 마지막 상태를 ‘엔트로피가 크다’고 말한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상황(계)에서 엔트로피가 큰 쪽으로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물리학자들은 ‘열역학 제2법칙’이라고 부른다. 집안 청소를 안 하고 가만히 놔두면 점점 지저분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cha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