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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입법권 무력화” 비판 배경

입력 | 2004-10-26 23:26:00


노무현 대통령이 26일 모든 각료가 참석한 국무회의에서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해 포문을 열었다. 21일 헌재 결정 이후 닷새 만이다.

노 대통령은 25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헌재 결정의 법적 효력을 인정하겠다고 밝힌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날 국무회의에선 ‘입법권 무력화’ ‘국회의 헌법상 권능 손상’ ‘헌정질서 혼란’ 등의 표현으로 헌재를 정면 비판했다.

불복 수단이 없는 헌재의 위헌 결정은 어쩔 수 없이 수용하겠지만, 위헌 결정의 근거인 ‘관습헌법 논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런 징후는 이미 헌재 결정 직후 노 대통령이 “처음 듣는 이론”이라는 반응을 보였을 때부터 나타났다. 노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는 “관습도 바뀌는 것이고, 판례도 바뀌는 것”이라고 미묘한 발언을 했고, 26일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들과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통령, 국회, 수도권, 지방 모두가 패자가 됐다”고 심경을 토로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이 개헌 추진과 같은 승부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발언은 헌재가 정부의 중요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돌파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헌재는 노 대통령의 임기가 후반기에 들어서는 2006년 8, 9월에 가서야 재판관 9명 중 5명이 임기만료로 바뀌게 된다. 이는 노 대통령이 앞으로 1년10개월가량 현재의 헌재 재판관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도 국회의 입법권이 헌재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은 앞으로도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또 여권이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에 대해 한나라당이 헌재에서 위헌 여부를 따져 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노 대통령은 헌재에 강한 경고메시지를 보냄으로써 헌재에 의해 국정운영 기조가 휘청거리게 되는 사태를 미연에 막아 보겠다는 심산인 듯하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