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남자 냄새’는 강하다. 잘 생긴 얼굴이지만 ‘꽃 미남’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배우 정우성(31).
비슷한 연배의 장동건(32)이 그와 곧잘 비교 대상이 되지만 정우성의 얼굴은 훨씬 마초적이다. ‘비트’ ‘태양은 없다’ ‘유령’ ‘무사’ ‘똥개’ 등 주로 선 굵은 남성 취향의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과 누구보다 강한 눈빛 때문이다. 한 CF에서 눈빛만으로 여자 모델이 입은 옷의 어깨 끈을 삭둑 끊어버릴 정도니까. 25일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시사회가 끝난 뒤 그를 만났다.
‘…지우개’(11월 5일 개봉)는 공사장 목수 철수(정우성)와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수진(손예진)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멜로 영화. 1994년 ‘구미호’로 데뷔한 정우성의 11번째 영화다. 전작 중 마라토너의 도전에 러브 스토리를 곁들인 ‘러브’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멜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극중에서 너무 많이 울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눈물이 많은 남자”라며 웃었다.
관객의 가슴을 얼얼하게 만드는 두 사람의 대화.
“영민씨, 사랑해.”(수진)
“나두….”(철수)
남편에 대한 기억이 사라진 수진은 이전에 알던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 철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꾸한다. 정우성의 아이디어로 현장에서 만든 애드리브다.
“오후 2시쯤 시나리오를 건네받아 오후 8시쯤 다 읽자마자 친분이 있던 이재한 감독에게 축하 전화를 했어요. 이때는 시나리오가 좋다는 의미였지 꼭 제가 하겠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만나 얘기하다 제가 철수가 됐죠.”
그 자신이 남성적인 영화를 선호한 것이 일차적 이유지만 제작사들도 그를 다른 장르, 다른 그림으로 쓰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이 배우의 강한 얼굴과 남자 냄새는 장점이자 약점이다.
“제가 꽃미남이라고요? 원빈 조인성 강동원, 이런 배우들이 꽃미남이죠. 어쨌든 난 그 표현이 싫습니다. 얼굴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 같은 건데 제 얼굴은 일상화된 얼굴이 아니라 아쉬워요.
예를 들어 ‘박하사탕’ ‘오아시스’ 같은 영화는 (설)경구 형이 맞지, 제 얼굴은 안 어울립니다. 관객이 제 얼굴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30대가 되면서 찍게 된 멜로 영화는 연기인생에서 약간의 변화라고 고백했다.
“몇 년 전에는 ‘…지우개’ 같은 멜로 영화를 찍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20대 때는 사랑을 환상적으로 바라봤는데 나이가 들면서 사랑과 세상을 현실적인 조건과 넓은 눈으로 볼 수 있게 됐어요.”
그에게는 인터뷰 때마다 ‘내년을 넘기지 않겠다’고 답해온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감독 데뷔, 또 하나는 10년 이상 사귄 연인과의 사랑, 결혼이다.
“내년 하반기 ‘입봉’(연출 데뷔)할 생각입니다. 시나리오는 나와 있고 ‘비트’ ‘태양은 없다’ 스타일의 청춘 멜로죠. 처음에는 감독만 하려고 했는데 점점 욕심이 많아져 주연까지 할 것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잠깐 침묵을 지켰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사랑요? 모든 말과 느낌이 어울리는 단어 아닌가요. 자기를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으로 시작되는 것, 움직이는 것, 유행가 가사처럼 ‘치’ 하면서 욕하지만 결국 빠져드는 것이죠. 결혼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아마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 세월만큼 그는 배우와 인간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도 ‘비트’의 그늘에 있다고 말했다. 깊이 있게 성숙하고 싶지만 추억도 간직하고 싶다면서.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