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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누가 ‘헌정 질서’를 혼란케 하는가

입력 | 2004-10-27 18:24:00


노무현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국회의 입법권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무력화되는 일이 반복된다면 헌정질서의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입법 행정 사법 3권의 견제와 균형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억제하려는 헌법의 기본원리에 배치되는 발언이다. 국회가 헌법에 합치되도록 권한을 행사했는지를 헌재가 심사하는 것은 입법권의 과잉 행사를 억제하기 위한 제도다.

“헌재 결정으로 국회의 헌법상 권능이 손상됐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도 헌법 원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헌법은 국회의 입법권이 과잉 행사되거나 국민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때 견제하는 장치를 여럿 두고 있다. 대통령의 법률안거부권이나 헌재의 위헌법률심사권이 이에 해당한다. 헌재의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위헌 결정도 헌법이 헌재에 부여한 권한 안에서 이루어졌다.

헌재는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는 않았지만 국민이 제정한 헌법에 의해 민주성이 인정되는 헌법적 대표기관이다. 일부 정치인과 학자들이 헌재 재판관들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 운운하며 헌재 해산론까지 주장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언동이다.

위헌법률심사권은 인권 보호, 소수파의 권리 보장 의미를 지니고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도 국회 의석 3분의 2를 넘는 의결에 의해 탄핵소추를 당했지만 헌재 결정으로 대통령 지위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때는 왜 국회의 권능을 침해하는 헌정질서 혼란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효력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수용 의사를 밝혔다가 헌재를 비판하고 나선 의도가 석연찮다. 4개 쟁점 법안의 위헌론을 의식해 헌재를 압박하기 위한 것은 아닌가.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권력이 헌재 기능을 위축시키는 발언을 거듭하는 것이야말로 헌정 질서를 혼란케 하는 일이다. 헌재의 존립 목적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남용으로부터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