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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박영균]한국경제 ‘脫線경보’

입력 | 2004-10-27 18:24:00


경제 불황으로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투자와 소비가 부진해 경제가 무기력증에 빠졌다는 진단이 나온 지도 오래전이다. 수십조원의 돈이 해외로 빠져 나가고 이민 비행기가 붐빈 지도 한참 됐다.

‘경제위기 아니다’ ‘수출은 좋다’면서 목에 힘을 주던 정부의 태도가 약간은 바뀐 듯하다. 뒤늦게나마 “먹고살기도 힘들다”는 민심의 흐름을 붙잡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나 제대로 방향을 튼 것일까. 아직도 정부의 정책방향을 신뢰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먼저 경제난국에 대한 처방이 잘못됐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조차 ‘단기순환적인 요인이 아니라 중장기적인 성장잠재력에 대한 우려’라고 진단하고 있는데 경기처방만을 내놓고 있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가 엊그제 밝힌 재정확대와 연기금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방침은 간이 나쁘다는 데 피로회복제만 권하는 격이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도 인정한 ‘경제 무기력증’의 원인은 비경제적인 요인에 있다. 친노조 반기업주의로 요약되는 정치, 이념적인 문제로 기업과 소비자들이 활력을 잃고 있지 않는가. ‘세계경제포럼의 경쟁력 11단계 하락’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대로 기업과 소비자의 무기력증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좌파가 아니다’라는 이해찬 총리의 말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유럽의 기준으로 보면 좌파가 아니라 우파에 해당하겠지만 한국의 기준으로는 좌파가 아닌가. 좌우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민간기업의 발목을 잡은 채 공공투자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민간분야와 공공부문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경제가 투자와 소비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듯이 한쪽 바퀴만으로는 제대로 갈 수 없다. 재정확대만으로 모자라 연기금까지 사회간접자본 투자에 동원하겠다는 것은 민간부문이 쪼그라들더라도 공공부문으로 돈을 몰아가겠다는 의도이다. 그렇지 않아도 재건축 규제와 과도한 세금 공세로 민간 건축은 올스톱 상태이다. 민간기업은 숨을 죽이고 공공사업만 벌이는 기형적인 경제구조를 만들 셈인가.

공기업이 해야 할 일이 있고 사기업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민영화가 가능한 부문에서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민간에 경영을 넘기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공기업의 민영화가 아니라, 사기업의 공영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영이 어려운 증권사를 자회사로 만들어 증권업에 진출한 산업은행도 그런 사례 중의 하나이다. 과거에 산업증권을 망하도록 부실경영을 한 ‘원죄’가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경제호를 책임지고 맡을 기관사도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경험 있는 경제관료들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입을 다물고 있고 무경험자들이 핸들을 잡은 탓이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을 찾는 격’으로 서두는 모습이 아마추어를 보는 듯하다.

지금 한국경제호는 활력을 잃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자금도 노동력도 남아 있지만 누구도 나서려고 하지 않을 뿐이다. 현 정권은 바퀴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채 열차를 내보내려고 서두르고 있다. 탈선위험을 안은 채 무조건 엔진을 돌릴 수는 없지 않는가.

박영균 경제부장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