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민간인이 철책 뚫고 월북” 軍발표 의문투성이

입력 | 2004-10-27 18:30:00


27일 군 당국이 강원 철원군 A부대 철책 절단사건을 민간인 월북(越北)으로 규정하고 월북자 신원 확인에 나섰으나 의문점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민간인의 철책 접근=정부 합동신문조(합신조) 관계자는 이날 “신원미상의 사람 1명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문제는 그 사람이 누구냐는 것.

전방부대 출신 장교들은 “민간인이 민간인 통제선(민통선) 밖에서 철책까지 접근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 일부 주민들이 산나물을 캐기 위해 민통선 안으로 몰래 들어왔다가 순찰 매복하는 병사들에게 적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합신조 관계자는 “A부대의 경우 철책에서 30∼40m 밖에 민간 농장이 있다”며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출입 초소에서 신원 확인을 받아야 하지만 산을 통하면 몰래 들어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철책을 절단하려면 경계병들의 움직임을 반드시 파악해야 한다. 합신조 관계자는 “며칠 동안 숨어서 우리 군의 순찰 상황을 분석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같은 설명은 오히려 민간인이 아닐 가능성을 높인다.

▽지뢰밭 의혹과 북한군 동향=민간인이 1.5∼2km의 지뢰밭을 무사통과했다는 추정도 납득하기 힘들다. 월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25일 밤부터 26일 새벽 사이 이 일대에선 지뢰 폭발음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합신조는 “지뢰밭 안에는 우리 군인과 그곳 동물들이 지뢰를 피해 자주 이동하면서 생긴 작은 길이 있다”며 “월북자가 지뢰밭 상황을 잘 아는 A부대 출신자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군 내부에서조차 “밤에 어떻게 그 작은 길을 확인할 수 있느냐”고 지적한다.

또 다른 의문은 북한군이 관련 움직임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월북자를 발견했다면 경고 방송이나 안전한 길을 유도하는 방송을 했을 것인데 우리 군의 감청장비에서는 이 같은 음성이 잡히지 않았다.

▽남파 간첩의 복귀?=남은 가능성은 ‘남파 간첩의 복귀설’이다. 군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사전에 복귀 경로에 대한 정보를 상세히 간첩에게 전달하고, 복귀 당일에는 환영조(組)가 군사분계선 부근까지 나와 간첩을 인도한다.

합신조 관계자는 “월북자의 흔적을 살펴보면 간첩만큼 치밀하고 자세하게 철책 부근 상황을 알지 못했다”며 “남파 간첩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한 전방부대에서 근무했던 탈북자는 “북한 철책지역은 지뢰밭뿐 아니라 1만V의 고압선과 각종 폭발물들이 설치돼 있다”며 “민간인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지역까지 무사히 통과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향후 조사와 문책=합참은 26일 오후 전비태세검열실 이성호 차장(육군 준장)을 단장으로 하는 합동조사단을 A부대로 파견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현장 지휘관 및 경계병 등에 대해서는 책임을 엄중하게 묻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해 군은 현장을 언론에 공개하거나 현장사진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검토해 보겠다”며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 의혹을 사고 있다.

한편 군 당국은 26일 밤 경찰에 “월북자를 봤다”는 신고를 한 전방지역의 60대 주민을 조사했으나 “진술이 오락가락해 신빙성이 낮다”고 밝혔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