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어.”
얼마 전까지 프랑스를 찾은 외국 관광객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불만을 터뜨리곤 했다. ‘영어를 쓰면 무시당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그러나 적어도 파리에서는 이런 불평은 옛말이 돼 가는 분위기다.
시내 관광지와 쇼핑가, 식당가에선 대부분 영어를 써도 아무런 불편이 없다. 외국인 손님에겐 영어로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흔해졌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프랑스 교육체계를 연구하는 한 정부 위원회는 지난주 말 “영어를 초등학교 필수과목으로 채택하자”는 권고안을 냈다. 영어 실력이 나은 다른 유럽연합(EU) 국가 학생들을 따라잡자는 것이다.
보고서가 나오자 프랑스가 찬반으로 나뉘어 논란이 한창이다. 장피에르 라파랭 총리와 프랑수아 피용 교육부 장관은 권고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올해 말의 교육개혁 때 권고안이 반영되기를 기대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정치권과 교육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반대론자들은 “영어가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는 언어이기는 하지만 권고안은 ‘문화의 다양성 추구’라는 프랑스 교육철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크 시라크 대통령도 최근 “영어의 확산은 재앙”이라고까지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간 르파리지앵은 25일 장관들의 영어실력을 조사해 보도했다. 영어가 유창한 사람은 내무, 유럽담당 장관과 정부 대변인 등 3명에 불과했다. 총리와 재무장관을 비롯해 외무장관조차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신문은 “영어실력이 뒤지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큰 핸디캡”이라는 한 장관의 말을 인용하면서 일부 각료들은 뒤늦게 영어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어를 필수과목으로 채택하자는 방안에 대해 아직은 반대 여론이 강한 편이다.
파리=금동근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