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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산책]슬퍼서 더 아름다운 이별… ‘이프 온리’ 외

입력 | 2004-10-28 16:18:00

'이프 온리' -사진제공 유니코리아


《29일 두 편의 로맨스 영화가 개봉된다. 각각 할리우드 영화와 일본영화인 두 편은 따뜻하면서도 쓸쓸하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하지만, 스타일은 아주 다르다.》

▼이프 온리▼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미국 여성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는 런던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영국 남자 이안(폴 니컬스)에게 섭섭한 게 많다. 이안은 일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사만다의 졸업연주회 뒤 레스토랑에서 다툰다. 뛰쳐나와 혼자 택시를 탄 사만다는 교통사고로 숨진다. 괴로움에 잠든 이안에게 다음날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안은 운명을 바꾸는 게 불가능함을 깨닫고, 모든 사랑을 담은 마지막 하루를 사만다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이프 온리(If Only)’는 ‘사랑의 블랙홀’(1993년)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다. 차이라면, ‘사랑의…’는 ‘오늘’이 끝없이 반복되는 데 비해 이 영화는 단 ‘하루’만 재생된다는 점이다. 결국 애절한 제목처럼 ‘이프 온리’는 ‘하루’ 속에 얼마만큼의 사랑과 슬픔과 감동과 안타까움을 응집시키느냐로 승부 날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프 온리’는 연인용 영화론 손색이 없다. 영화 속 ‘하루’엔 과거를 찾아 떠나는 여행, 소중한 사연이 담긴 깜짝 선물, 빗속에서 던지는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해 줘서 고맙다”는 고백, 눈물의 키스, 너무 늦어버린 이해와 화해, 예상을 뒤집어서 더 슬픈 결말까지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로맨스 아이템’들이 모두 담겨 있다. 사만다가 자신이 작곡한 사랑노래를 졸업연주회에서 부르는 장면(제니퍼 러브 휴잇이 직접 부른다)은 가뜩이나 뭉클하게 부풀어 오른 관객의 감정 자루를 콕 찍어 터뜨린다.

그러나 ‘이프 온리’는 슬프되 안타깝진 않다. 이는 ‘마지막 하루’에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 정작 ‘마지막’이란 절실함이 묻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슬픔’이라는 정조(情調)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강력한 힘을 보여주지만, 막상 그런 정조를 점점이 구성하는 에피소드들은 관습적이다. 결국 ‘그들에게만 일어날 것 같은’ 내밀함이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제니퍼 러브 휴잇의 애처로운 얼굴은 ‘이프 온리’와 제대로 맞아 떨어진다. 남자 주인공인 폴 니컬스는 아쉽다. 냉정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부족한(특히 철없어 보이는 헤어스타일) 탓에 그의 ‘개과천선’이 갖는 극적 효과가 반감된다.

‘내가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를 연출한 길 영거 감독. 15세 이상 관람 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진제공 스폰지

대학생 쓰네오(쓰마부키 사토시)는 이른 아침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는 정체 모를 유모차와 마주친다. 그 안에는 음산한 목소리와 표정을 가진 구기코(이케와키 지즈루)라는 소녀가 앉아 있다.

다리가 불편해 걷지 못하는 구기코는 할머니가 동네에서 주워온 책들을 읽는 게 유일한 취미. 쓰네오는 구기코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 바깥세상을 두루 보여주면서 친구가 되고, 구기코는 사강의 소설 속 주인공 이름을 딴 ‘조제’로 자신을 불러달라고 한다. 할머니가 죽은 뒤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하지만, 세상은 쉽지 않다.

일본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신하는 낯선 영화다. 감상적인가 하면 엽기적이고, 만화적인가 하면 현실적이고, 울리는가 하면 침묵하고, 사랑과 헌신을 말하는가 하면 속절없는 비겁함과 권태로움을 말하니 말이다.

여기서 구기코는 사다리 위에 앉아 요리를 하다가 대뜸 엉덩이로 쿵 떨어져 내려와 집안을 돌아다니는가 하면 쓰네오에게 섹스를 먼저 제안하고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상으로 줄게”라는 언사도 서슴지 않는데, 이를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도발적인 장치라고만 보기엔 모자람이 있다.

‘조제’란 존재는 철없는 젊음이 한번쯤 머물렀다 떠나갈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성장기의 사랑(의 대상)을 빗댄 은유로도 보인다.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아름다운 순간은 보여주고 갈등하는 순간은 상상하게 만듦으로써 쓰네오가 구기코를 떠나는 결말에서도 누군가의 잘잘못을 가려내거나 이별의 이유를 밝히려 들지 않는다. 대신 ‘그냥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란 제목처럼 비록 아무런 연결고리 없이 동떨어지게 된 존재들일지라도 이 세상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워터 보이즈’에 출연했던 쓰마부키 사토시가 특히 매력적.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