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오후 6시5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 10분 남았다. 컴퓨터를 끄고 사무실을 나섰다. 광화문 지하보도를 가로질러 약속 장소인 중국식당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주류 전문점에 들러 우량예(五粮液)를 한 병 산다. 좋은 술을 샀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행복지수가 점점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오늘처럼 술을 사들고 간 자리는 술이 메인이다. 주인에게 “요리는 술에 어울리는 것으로 알아서 주세요”라고 말한다. 해물,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를 재료로 한 요리에 수프까지 총 5가지가 나왔다. 그윽하고 깊은 술 맛에 맞춘 듯 모두 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린 담백한 요리였다. 술에 취하고, 요리에 취하고, 사람에 취해 웃고 떠들다 보니 행복지수는 금세 100에 도달한다.
이 정도면 진짜 술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글쎄, 아직 뭔가 부족하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할 때 “그냥 시간 나면 영화를 본다. 딱히 좋아하는 건 없고…”라는 사람과 “홍콩 누아르에 사족을 못 쓰고 어떤 감독의 어떤 작품이 어땠고…”라는 사람은 다르다.
술도 마찬가지다. A소주와 B소주의 차이가 무엇인지, 공정이 다른 건지 아니면 단순히 첨가물이 다른 건지, 맛이 다르긴 다른 건지 등을 아는 사람과 “그냥 A가 좋은데 딱히 이유는 없어. 묻지 마”라는 사람은 다르다.
이를테면 중국식당에 가서 우량예를 마실 땐 이런 얘기를 준비해보자. 알고 마시면 술이 달리 보이고 술맛이 달라진다. 다만 잘난 체하는 걸로 찍힐 수 있으니 분위기 봐가며 조심스레 말을 꺼내야 한다.
“술과 음식에 궁합이라는 게 있다면 중국요리에는 역시 중국술이 제격이다. 특히 좋은 술이라면 더 바랄 게 없다. 우량예는 수수 밀 쌀 찹쌀 옥수수 등 다섯 곡식으로 빚은 술인데 마오타이(茅台)주, 펀(汾)주, 양허(洋河)주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명주로 꼽힌다. 1915년 파나마 퍼시픽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판매량이 마오타이보다 5배 많다. 중국술의 대표선수다. 알코올 도수가 52도라지만 별 부담 없이 술술 넘어가는 것을 보니 정말 좋은 술 아니냐.”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