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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기자의 감성크로키] ‘아일랜드 화법’ 낯섦과 강렬함

입력 | 2004-10-28 17:13:00


단어들이 섬처럼 떠다닌다.

지적인 소수 컬트 팬의 열렬한 지지 속에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아일랜드’의 화법은 그래서 반짝반짝 빛났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소외 받고 상처 받아 “먼지처럼 살겠다”는 주인공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안 뺏긴다, 너. 좋아해, 내가.”

“환상을 버려야 해. 그거 버려지던데. 점층적으로.”

“내가 옳지 않더라도 내가 책임질래. 내 인생.”

“이젠 가족 놀이 안 할래요.”

“나 이제 불쌍해하지 마라. 경호 받는 행복 느꼈다.”

“혼자 사는 사람이 어디 있냐. 내 몸 속에 사람들이 산다. 어떤 사람은 머릿속에, 눈에, 손과 발에, 심장에, 뱃속에. 내 몸이 지구인가봐.”

불편하고 낯선 화법이다.

문장을 해체하면 영미 문법처럼 목적어가 동사 다음에 배치된다. 주어 역시 문장의 끝에 올 때가 많다. 철저히 동사 중심이다. ‘좋아하다’, ‘아프다’, ‘미안하다’, ‘고맙다’, ‘존경하다’ 등의 상투적 동사들은 그래서 그 의미가 낯설고 새롭게 다가온다. 텍스트의 중심에 우뚝 서 ‘사람’을 외치는 동사는 생소하게 역동성을 지닌다.

가볍다.

가능한 한 조사를 배제하고 ‘∼다’로 문장을 끝내기 때문에 절대적 질량이 가볍다. 짧은 낱말 하나하나가 섬 같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고 떨어져 연민 때문에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뜻한 대로 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정서처럼. 입양아인 여주인공(이나영)이 혈육을 찾는 행위조차 ‘가족 놀이’라는 유희로 바꾸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처음 사용한 ‘낯설게 하기’라는 용어는 우리의 지각이나 인식의 틀을 깨고 사물의 모습을 낯설게 해 사물 본래의 모습을 찾으려 한다. 지식은 텍스트 안에서 구성되고 축적되지만, 감성은 오히려 서커스 광대처럼 텍스트를 자유롭게 뛰어 넘나들며 풍성해진다.

‘아일랜드 화법’은 인간과 인간의 부딪침, 감성과 감성의 소통에 대해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 도치와 생략의 화법엔 보이지 않는 고독이 있다. 아마도 ‘낯섦’ 때문인 듯싶다.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