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사다리/이옥수 지음/248쪽 7500원 사계절
대학 1학년 때, 선배들은 이 사회에 모순이 많다고 늘 이야기했다. 나는 내가 사는 동네를 둘러봤다. 어디에도 그렇게 어렵게 사는 사람이 없어 보였다. 세상의 모순은 선배들의 말 속에만 있었고, 나는 그 말이 세상을 과장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 뒤로 내가 거리시위에 동참하게 된 다음, 어느 날 다시 우리 동네를 둘러보았더니 온통 어렵게 사는 사람들투성이였다. 세상에! 어떻게 해서 몇 달 전과 몇 달 후에 둘러본 같은 동네가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지 나는 내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내 개인 삶을 보존하려 할 때 그 마음에 방해가 되는 현실이 내 눈에 뜨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선 자리를 합리화하는 본능이 있다. 그 욕망과 싸워야 우리는 올바른 눈을 가질 수 있다.
서울 서초동, 그곳엔 높은 권위를 자랑하는 법원이 있다. 귀한 이들이 사는 고급 아파트가 있다. 가난한 이들이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사는 비닐하우스촌도 있다.
이 책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가난한 집에는 기분 좋다가도 술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버지가 있다. 주인공은 즐겁기도 하지만 답답함이 더 많은 학교에서 도망치려다 가출을 하고, 거리에서 지독한 양아치에게 걸려서 도둑질을 배운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깡패 무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꾸 휘말리고 만다. 그 뒤로 이어지는 철거 이야기, 책을 쭉 읽다 보면 주인공이 참으로 죽고 싶은 심정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주인공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연은 있다. 술만 먹으면 아버지는 자기 삶을 한탄하고, 깡패두목도 자신의 불행을 하소연하고, 싸늘한 눈빛이 무서운 친구도 자기 가정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인물들에게 사연을 갖게 한 것은 작가가 이들에 대해 갖는 시선을 보여준다. 그들을 욕하기는 쉽지만, 그러나 욕하는 데 머물러서는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세상을 무덤덤하게 사는 친구가 이 책을 읽으면 충격을 좀 받을 것이다. 세상살이를 재현하는 문학의 힘이다. 논술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묻는 물음이다. 세상에 대한 느낌이 있어야 그런 문제에 온전히 대응할 수 있다. 몇 가지 찬반논리만을 익혀서는 글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너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건넨다. 컴퓨터와 입시문제집에 너무 오래 붙들려 있는 청소년들아. 보면, 달라진다. 책을 읽어봐야 다 비슷한 이야기지 하고 젊은 나이에 벌써 세상에 대단한 것 없다고 하는 허풍쟁이야, 이 책을 집어 들어라. 좋지 않은 환경에서 안타까워하는 친구들에게는 이 책이 벗이 되겠다. 기운 내라, 친구들아. 불행한 환경이었기에 더 속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나중에 이야기하는 멋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송승훈 경기 광동고 교사·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