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비하 발언 등으로 국회가 파행을 빚고 있는 29일, 총리실은 여느 때보다도 조용했다. 총리실 공무원들은 이 총리의 언동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행정부 수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야당을 ‘차떼기당’으로 몰아세운 것이 적절했다고 보느냐”는 기자의 물음에도 “할 일이 많아 그런 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반응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28일과 29일 사석에서 만난 공무원들은 달랐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역대 최고의 실세 총리’가 왔다고 해서 총리실 위상을 높여 줄 걸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떨어뜨렸다”고 아쉬워했다.
한 중앙 부처 국장은 “훈령이 다 총리 명의로 내려오는데 일국의 총리가 그런 식으로 막말을 하면 권위가 서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다른 중앙 부처의 간부는 “한나라당 안택수(安澤秀) 의원의 사임 요구에 ‘의원 주장에 물러날 사람이 아니다’고 답변하는 것이 너무 편협하게 들렸다”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이 차떼기 한 것은 사실이나 총리가 국회에서 그렇게 몰아세워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갈등을 조정하라고 책임총리를 맡겼더니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는 등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물론 한나라당 안 의원이 심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중앙 부처의 한 간부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 의원이 고압적이고 비아냥대는 말투로 총리를 몰아세운 측면도 있다. 국회의 권능만 믿고 행정부 수장을 모욕한 것도 문제”라며 양비론(兩非論)을 펴기도 했다.
이 총리는 6월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야당과의 대화를 통해 ‘상생의 정치’를 펴는 데 정성을 다하겠다. 충분히 대화하고 토론해서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인내심을 갖고 해 나갈 것이다”고 다짐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총리는 넉 달 만에 ‘인내심’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상생의 정치’도 물 건너갔다. 이 총리의 막말과 공격적인 자세로 공직사회가 술렁거리고 행정부의 권위도 추락했다. 공무원들이 가장 안타까워하는 대목이다.
정용관 정치부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