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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허영]국민의 공복임을 잊었는가

입력 | 2004-10-29 18:32:00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야당을 폄훼하고 동아 조선일보를 비난한 것은 우리 정치의 추악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준다. 정치권에서 비교적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평을 받던 사람이 총리가 된 후 갈수록 막가는 것을 보며 퇴보하는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확인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국무총리는 임명직 공무원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다. 그래서 총리를 ‘1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부른다. 모든 공무원과 국민의 모범이 돼야 할 총리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야당을 ‘나쁜 정당’으로 매도했다. 야당을 잠재적인 여당으로 생각하고 1937년 야당보호법까지 만든 영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야당은 민주정치의 필수요소다.

▼총리 막말은 국민 무시한 것▼

이 총리는 도대체 국회를 어떻게 생각하기에 그런 막말을 쏟아 내는가. 이 총리는 이미 유럽 순방 중 야당과 언론에 대해 막말을 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큰 시비가 되지만 사석에서 한 말이므로 접어 둔다고 하자. 그러나 국회에서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한다면 사정은 다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을 위해 국정을 논의하는 존엄한 공간이다. 더구나 국회의원들은 정부를 비판하고 질책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 정부 여당을 지지한 국민만을 위한 국회가 아니다. 정부 여당을 비판하는 야당을 지지한 국민도 국회의 국정 논의에서 당연히 응분의 주권자 대접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한나라당은 차떼기 정당인데 무슨 말이 많은가’하는 투의 이 총리의 발언은, ‘차떼기’ 정당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 정당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지지표를 던진 절반 가까운 이 나라의 주권자들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태도다. ‘나쁜 정당’을 지지한 국민도 나쁘기는 마찬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가. 총리 이하 공무원들은 국민의 세금을 받아 집행하며 그 세금으로 녹을 받는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좋든 싫든 국민 모두의 공복으로서 국민을 하늘처럼 받들어야 한다. 그런데 총리가 직접 나서서 공개적으로 국민을 경멸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총리의 거듭된 실언으로 노무현 정부의 품격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역대 국무총리 중 이 총리처럼 국회를 무시한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총리가 국회에서 막말로 야당 국회의원과 기싸움을 하면서 국회를 파행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국민은 할 말을 잃게 된다. 개혁이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옳다. 국회에서 겸손한 총리는 결코 비굴하거나 소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주권자의 민의의 전당 앞에서 공복으로서 머리를 숙이는 것이다.

이 총리의 동아 조선에 대한 거듭된 적대 발언도 야당 비하 못지않게 비이성적이다. 국무총리가 헌법상 주어진 권능을 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언론사도 헌법에 의해 보장 받은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언론의 책임과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우호적인 언론만 감싸고 비판적인 언론은 타도의 대상으로 삼아 국회에서조차 명예를 짓밟는 발언을 반복한다면 우리의 언론자유는 질식 상태에 놓일 것이다. 대통령이 동아 조선을 비난한다고 총리도 따라한다면 그 총리는 대통령의 사람일망정 국민의 공복은 아니다. 동아 조선의 성장과 영향력의 배경에는 이 두 신문의 논조에 공감하는 수많은 국민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아 조선에 대해 모욕과 탄압을 계속하는 것은 결국 이 두 신문을 구독하는 독자들의 알 권리 침해요 그들에 대한 인격 모독이기도 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동아-조선 비난은 구독자 모독▼

하물며 간첩의 인권까지 챙기는 참여정부가 야당을 모독하고 언론을 탄압하려는 가치전도적 정치 행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이 수수께끼를 푸는 일은 노사모만이 아닌 전체 국민의 몫이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