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러시아 외교당국이 땅을 치고 있다.
한국의 수도 이전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될 것으로 믿은 러시아는 9월 모스크바 한러 정상회담에서 서로 상대국에 총영사관을 증설해 주기로 약속했기 때문. 헌재 결정으로 한국에 더 이상 공관을 늘릴 명분이 없게 된 러시아로서는 ‘일방적 양보’만 한 셈이 됐다.
우리 외교 당국은 “헌재의 결정이 정상회담 전에 나왔더라면 과연 러시아가 (공관 증설에) 순순히 합의해 줬겠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공관 증설이 양국의 첨예한 현안이 됐던 것은 서로 같은 수의 공관 유지를 고집하는 러시아의 완강한 상호주의 원칙 때문이었다.
현재 한국은 모스크바에 대사관, 블라디보스토크에 총영사관을, 러시아는 서울에 대사관, 부산에 총영사관을 두고 있다. 러시아는 한국에 두 개의 공관을 유지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한국은 170배나 넓은 러시아에 같은 수의 공관으로는 외교 수요를 감당하기 벅찬 상황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이르쿠츠크에 추가로 총영사관 설치를 희망해 왔지만 러시아의 ‘원칙’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하지만 수도 이전으로 한국에 공관 증설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한 러시아는 선선히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9월 정상회담에서 ‘한러 공동선언’에 총영사관 신설을 포함시켰다.
헌재 결정으로 수도 이전이 무산되는 것으로 상황이 돌변하자 러시아는 “한국의 복잡한 국내 정치에 당했다”고 황당해 하는 분위기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