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기, 달고나, 왕사탕, 피자두…. 70, 80년대 유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혀끝을 사로잡았던 불량 군것질거리들이다. 초등학교 등하굣길에는 으레 ‘불량’ 군것질을 파는 좌판이 섰고, 아이들은 주머니에 동전이 없어도 그 앞을 떠나지 못한 채 마냥 서성거렸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먹을 것도 없었다. 자존심도 없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나는 남루하고도 비루한 아이였다. 당시의 나는 늘 먹을거리에 껄떡댔다. 남이 뭐 먹을 때 넘겨다보는 게 가장 추접스럽다고 하는데, 그건 먹고 있는 작자의 입장이고 넘겨다보는 작자 입장에선 그것도 호사였다. 그때 나를 가장 유혹했던 불량식품은 딱딱하고 푸른 자두를 카바이드로 슬쩍 익혀 사카린과 핏빛 식용물감으로 물들인 일명 ‘피자두’였다.
피자두는 사카린이 주는 불량한 단맛도 맛이었지만, 와작 하고 깨물면 입가에 핏빛 물감이 뚝뚝 흘러 구미호를 무서워하던 친구들을 놀릴 수도 있는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먹고 싶은 그것을 먹을 수 없었다. 늘 먹고 싶은 걸 먹을 수 없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애인을 하루 이틀 못 보는 괴로움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튼 나는 피자두가 너무 먹고 싶어 급기야 도둑질까지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도둑질의 목적지는 단골가게 지연네. 어느 일요일 아침부터 낮까지 나는 그 집 앞에 앉아 땅바닥에 괜한 그림을 그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그러고는 순둥이 아줌마가 잠시 변소에 간 사이 재빨리 한 알을 훔쳐 동네 후미진 골목으로 뛰었다. 그리고 죄의식도 없이, 아작아작 피자두를 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그것을 다 먹고 ‘딱 한 알만, 더’ 하는 생각으로 다시 지연네 앞으로 갔다. 근데 아줌마가 대뜸 날 불렀다. 혹시나 싶어 놀라 고갤 들었는데, 아줌마가 ‘이거 먹어라’ 하시며 피자두 한 알을 건네시는 게 아닌가. 나는 너무 좋아 고맙단 말 한 마디 할 겨를도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냅다 집으로 뛰었다.
그러고는 피자두를 먹으며 구미호를 흉내 낼 요량으로 거울 앞에 섰는데, 가관이었다. 훔쳐 먹은 피자두의 흔적이 입가는 물론 이 사이사이까지…. ‘아줌마가 내 도둑질을 알았구나.’ 아침부터 낮까지 가게 주위를 맴돈 어린 도둑에게 아줌마는 매 대신 피자두를 주었구나 싶어 아팠다. 왜 나는 그 착한 아줌마의 피자두를 훔쳐 먹었나 싶어 내가 미웠다. 그래서 거울 속의 나를 보며 울면서 피자두를 먹었다. 그러고는 다시 그 집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지연네 아줌마, 그분은 이제 이 세상 분이 아닐 것이다. 아줌마에게 짧은 연서를 보낸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저한테 불량식품을 주셔서. 저는 아줌마네 불량식품 사먹고, 참으로 불량하게 자랐습니다. 불량하게 자라니 불량해서 외로운 많은 불량한 이들과 어울릴 수 있어서, 그들을 이해하기 쉬워 참으로 좋네요. 진정 고맙습니다.”
● 노희경 방송작가는?
△1966년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 △MBC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KBS 드라마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 ‘고독’ ‘꽃보다 아름다워’,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 등 집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