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의 편집위원회 설치와 편집규약 제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는 없다. 오스트리아가 유일하게 신문사의 편집규약 체결을 법제화했으나 권장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여당의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이 국회를 통과한다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신문사 편집위 설치와 편집규약 제정을 법으로 강제하는 나라가 된다.
●“편집위 구성 의무화는 헌법 위반”
신문법안은 신문사 편집위원회를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업자와 근로자 대표로 구성토록 했다. 편집위를 설치하지 않으면 2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일부 신문사는 오래전부터 자율적으로 유사한 협의체를 두고 있으나, 이 법안이 통과되면 정부 지침에 따라 새로운 편집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장영수(張永洙·헌법학) 고려대 교수는 “편집위 구성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언론자유 침해로 위헌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1995년 ‘영화 상영 전에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를 받도록 한’ 구 영화법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을 사례로 든다. 언론출판의 사전검열을 금지한 헌법조항을 어겼으며, 공연윤리위원회의 구성에 정부가 직접 개입해 언론자유를 제약했다는 게 위헌결정 요지였다.
●편집위의 막강한 권한과 경영침해
신문법안 제17조는 편집위가 제정하는 편집규약에 담아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를 보면 편집위의 권한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 수 있다. 우선 편집책임자의 임면에 관한 사항을 편집규약에 담도록 한 것은 사기업인 신문사의 인사권과 경영권을 침해할 위험이 있다.
일반기업엔 근로자의 경영참여권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독일도 신문사엔 노사협약 외의 개입과 간섭을 일절 금하고 있다. 신문사는 발행인의 논조를 펴는 ‘경향(傾向)기업’이라는 논리에서다. 사회민주주의적 경향이 있는 북유럽 국가들도 위헌논란 때문에 편집위나 편집규약을 법제화하지 않고 있다.
●신문논조에 대한 ‘내부 감시기구’?
신문법안은 또 편집규약에 △편집의 공공성과 자율성 보장 △편집의 기본원칙 및 지침 △편집방향의 심의 결정 변경 등에 관한 사항까지 규정토록 했다. 이 세 가지 항목은 신문의 논조에 관한 것. 그뿐만 아니라 ‘취재·제작 거부권에 대한 사항’까지 포함토록 함으로써 물리적인 영향력 행사까지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편집위는 신문법안이 제시한 편집기준의 준수 여부를 따지는 내부감시기구 역할을 맡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 문제가 되는 조항이 바로 제5조의 ‘신문사는 정부 또는 정당, 특정집단의 정책 등을 공표함에 있어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하고 각 정치적 이해당사자에 관한 보도를 함에 있어서 균형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 제5조와 제17조를 엄격히 적용할 경우 특정 사안에 대한 각 신문사의 독자적인 논조나 입장은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게 다수 언론학자들의 견해다.
●한국의 편집권 개념도 독특하다
신문법안이 편집위와 편집규약에 관한 강제조항을 둔 것은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개념인 ‘편집권’을 근거로 발행인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 신문법안 3조는 ‘정기간행물 사업자는 편집인의 자율적인 편집을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편집권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48년 일본신문협회의 ‘신문편집권 확보에 관한 성명’이며, 현재 이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편집권은 경영권의 하위개념으로서 발행인에게 배타적으로 귀속된다는 논리에서 출발했다. 요즘 한국에서 거론되고 있는 편집권은 일본과도 달라 역시 세계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발행인의 편집권 인정한 독일 판례
미국에서는 편집권이라는 개념이 따로 논의되지 않는다. 발행인이 경영은 물론 편집의 기본방침을 정하는 게 보통이다. 유럽의 법률에서도 편집권에 관한 명확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1979년 11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판례는 ‘발행인이 지향하는 편집방침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전제하고 ‘이를 억압하는 정부 또는 비정부단체의 간섭이나 영향력을 금지한다’며 편집권이 발행인에게 있음을 분명히 했다.
신문법안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신문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우리 헌법 21조를 근거로 들면서 여기서 ‘신문의 기능’은 편집권이라고 주장하지만, 헌법학자들은 이 또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비판한다.
●‘법적 강제’는 ‘外的 침해’를 부른다
문재완(文在完) 단국대 교수는 “이 조항에서 말하는 법률이란 정부가 언론을 지원하는 형태의 법률을 의미하는 것으로 봐야지 정부가 언론기관에 간섭할 수 있는 규제법규의 헌법적 허용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권영성(權寧星) 서울대 교수도 “헌법상 언론자유는 ‘신문발행의 자유’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수년 전 ‘언론개혁연대’ 토론회에서 “편집권은 편집종사자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강경근(姜京根) 숭실대 교수마저 이른바 언론개혁세력이 자신의 논지를 오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헌법상 편집권이 신문사의 내적 자유로서 인정된다 하더라도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외적 침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편집규약 제정 현황국가법제화 여부내용미국×편집권 개념 정의조차 뚜렷하지 않음 영국×노사 자율적 제정 권고 독일× ―자율적 편집규약 제정
―법적 강제는 위헌프랑스×노사 자율일본×노사 자율오스트리아△―법에 편집권 관련 규정을 뒀으나 권장 규정
―경영진이 거부할 수 있으며 일부 신문사만 편집규약을 제정노르웨이×신문발행인협회와 기자협회가 자율적으로 제정한국(신문법안)○―편집위원회 구성, 편집규약 제정 의무화
―편집규약에 포함될 구체적인 내용 적시
―편집인 임면권까지 편집위에 부여
―위반시 과태료 2000만원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