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성
현행 우리나라 영어 교과서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네 가지 기능을 모두 함께 다루고 있다. 그러나 실제 수업에서는 네 가지 기능을 통합적으로 훈련시킨다는 표면적 목표와는 달리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안되는 듯하다. 진도를 이유로 읽기를 제외한 듣기나 말하기, 쓰기 등의 기능이 희생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교과서에는 분명히 듣고 말하기가 포함돼 있는 데도 실제 수업에서는 듣기나 말하기 활동이 거의 없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영어교육의 이중성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앞으로 도입될 제8차 교육과정에서는 지금처럼 한 교과서에 네 가지 기능을 모두 포함시키지 말고 듣기·말하기용 교과서(말 교과서)와 읽기·쓰기용 교과서(글 교과서)를 따로 제작했으면 한다. 이는 중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적용돼야 한다.
교사나 학생들 모두 수업시간에 말과 글 중 어느 쪽에 중점을 둘 것인지 명확해지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모순은 크게 줄어든다. 교사에게 말과 글 중 자신이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을 선택할 여지를 줄 수 있고, 학생들도 말과 글을 각각 분명하게 접하게 돼 한 가지 기능을 강조하느라 다른 기능이 희생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게 된다. 현재와 같이 읽기 중심의 교과서에 억지로 듣기 말하기 부분을 포함시키는 데서 오는 문제도 완화될 것이다.
분량 조정도 검토해 볼 만하다. 지금의 영어교육 여건에 비춰볼 때 현 교과서 분량은 많은 편이다. 교사가 내용을 적당히 한국어로 설명해 주면서 진도 나가기에 바쁘다. 영어수업에서는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교사와 학생간, 혹은 학생들끼리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연습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진도 때문에 이런 연습이 불가능하다면 교과서 분량을 줄이는 게 훨씬 낫다.
제8차 교육과정에서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연습에 더 많은 시간이 할애돼야 한다.
한학성 경희대 교수·영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