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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이응노 화백 탄생 100주년 ‘거장의 숨결’

입력 | 2004-11-02 18:11:00


올해는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1904∼1989) 화백이 태어난 지 100주년 되는 해. 그의 화업을 기리는 다양한 자리가 마련된다.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다시 고암을 생각한다: 고암 이응노 탄생 100주년 기념전’(3일∼내년 2월 13일)은 초기부터 말년까지 그의 대표작 150여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1922년 서화가 김규진 문하에서 사군자를 익히기 시작해 일본 유학 후인 1945년 광복 전후까지, 광복 이후 1958년 프랑스로 건너가기까지, 도불(渡佛) 이후 1960∼1970년대 콜라주부터 문자추상까지, 1980년대 ‘군상(群像)’ 작품들까지 시기별로 나뉘어 구성됐다.

조선미전 입선작인 ‘동도하안(東都河岸·1938년)’과 ‘황량(1939년)’, 추상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풍경화 ‘해저(海底·1950년)’ ‘생맥(生脈·1950년대)’ ‘산촌(山村·1956년)’, 본격적인 추상의 길로 들어선 이후 발표된 ‘구성’ 연작(1961∼1962년), 1980년대 ‘군상’ 연작과 동베를린 사건으로 수감 중(1967∼1969년) 그린 작품들이 출품된다.

충남 홍성 출신인 이 화백은 일본에서 동양화와 서양화를 공부했으며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청죽(靑竹)’으로 입선했다. 1958년 파리에 정착한 뒤 1963년 살롱도톤전에 출품하면서 유럽 화단에 알려졌다.

고암 이응노 작 ‘반전 평화’(1989년). 고암이 마지막 예술 혼을 불사른 ‘군상’ 연작 중 하나다. 한지에 먹으로 그린 수많은 사람들이 ‘반전 평화’라는 한자어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제공 덕수궁미술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사건에 연루돼 국내로 강제 소환되어 옥살이를 하다가 1969년 사면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이후 파리로 돌아가 동양의 서예와 문인화 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 기법을 혼용한 환상적 기호로 독창적 세계를 구축했다. 고암이 마지막 예술혼을 불사른 군상 그림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소식을 전해 듣고 시작한 화제(畵題)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는 대가들의 작품을 타피스트리로 제작해 소장하고 있는 프랑스 모빌리에 국립미술관이 제작한 이응노 타피스트리 2점이 국내에서 처음 소개된다. 1년 넘게 제작한 3m가 넘는 대작들이다. 02-779-5310

한편 서울 평창동 이응노미술관에서는 ‘파리 이응노 아틀리에’전이 12월 31일까지 계속된다. 고암의 마지막 작업실이었던 프레 생제르베(Pre St. Gervais) 아틀리에를 재현해 아틀리에를 메웠던 완성·미완성의 작품들과 100여장의 기록사진, 유품들이 나온다. 02-3217-5672

또 파리 동양미술학교 제자들의 작품을 모은 ‘묵기(墨技)그룹 서울전’도 3∼14일 서울 인사동 물파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고암은 파리에 정착한 뒤 세르뉘시 미술관(Musee Cernuschi)에서 동양미술을 가르친 바 있다. 02-739-1997

고암의 부인 박인경(朴仁景· 79) 이응노미술관장은 “고암은 보는 것, 생각하는 것, 만지는 것은 물론 꿈꾸는 것까지 놓치지 않았던 그림 욕심쟁이였다”며 “남녀노소, 동서양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고암의 그림이 분열의 이 시대에 작은 구원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