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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권혁범]‘남성 공화국’ 대한민국

입력 | 2004-11-02 18:18:00


얼마 전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진 여성 경찰들의 ‘다과 접대’ 사건은 한국사회가 여성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그대로 드러낸다. 경찰의 임무가 치안 유지 외에도 다양한 것이 있겠지만 다과 접대가 경찰 업무 영역인가. 그렇다면 남성 경찰은 왜 그런 ‘서비스’ 업무에서 면제를 받고 있는가. 그나마 이런 풍경이 언론의 뉴스거리가 되는 것은 이 문제를 제기한 이영순 의원을 포함해 여성 국회의원 및 기자가 많아진 덕택이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접대업무는 여성직원의 몫?▼

요즘 같은 세상에 ‘간 큰 남자’가 아니라면 자신이 남성우월주의자라고 공언할 이들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남자가 중심적 주체적인 역할을 맡고 여성은 주변적이고 사소한 일, 보조적인 업무를 맡는 게 여전히 ‘자연스러운’ ‘관습’으로 비친다. 성별적 분업 및 성별적 위계질서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없는 사람(남자)들은 정부기관, 국회, 사법부에서 언론, 기업, 학교, 길거리에까지 넘쳐나고 있으며 이들은 그 ‘낮은 의식’에도 불구하고 먹고사는 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다. 개혁이나 보수나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라는 ‘칭찬’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보조적 역할을 당연시하는 데는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그런 예는 널려 있다. 최근 37년 공직생활을 성공적으로 마감한 어떤 공직자 인터뷰 기사의 제목은 ‘가족엔 빵점이었죠’였다. 아주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실렸다. 헌신성을 가진 모범적인 공직자이지만 ‘가족에 빵점’인 사실 자체가 심각한 결함이 아니라 되레 그 남자 공직자에 대한 높은 평가로 이어지는 문화적 ‘관습’에 놀랐다. 만약 그가 여성이었어도 가족생활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37년이 ‘자랑스러운 얼굴’로 실렸을까. 아마도 “여자가 가정은 돌보지 않고 바깥으로만 돌았다는 것 아냐” 하며 항의하는 남성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성매매 피해자 보호와 성매매 처벌에 관한 두 가지 법률이 시행되자마자 일어나고 있는 반향도 이런 남성 중심의 ‘관습’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어떤 경제학자는 성매매 금지가 ‘인권침해’라고 공언하고 상당수 언론은 그 ‘부작용’ 현상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한술 더 떠 어떤 남성 의원과 지식인은 남성의 ‘성욕 해소’ 출구 보장과 여성들의 ‘생존권’을 외쳤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먹고사는 데 지장 없는’ 여성 지식인·운동가 대 빈곤층 매매춘 여성의 대결구도로 교묘히 몰고 간다.

물론 탈성매매를 위한 후속적 제도 개선과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매매춘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의견차가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혹시 대한민국 남자들이 갖고 있는 매매춘에 대한 남성 방어적 태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은 아니었을까. 매매춘이 직업의 ‘자유’와 ‘선택’의 문제라는 의식, 자기 돈 내고 하룻밤 즐기자는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무슨 큰 문제인가 하는 의식 말이다.

▼성매매법 비판은 남성중심 관습▼

법의 핵심은 매매춘 행위 자체가 아니라 빈곤 여성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성적 착취 산업을 근절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 법률에 약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인신매매와 성폭력으로 얼룩진 성산업의 현실을 외면하다가 법이 시행되자마자 ‘인권’과 ‘생존권’을 외치며 극소수의 ‘자발적 선택자’에게 초점을 맞추는 의도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심지어 그 자발적 선택이라는 것도 먹고살기 위한 생존권의 압박에 의해 강제된 사실이라는 점을 놓치고 있다. 혹 그런 남성들은 성을 ‘순수한 시장거래’에서 구입한다고 착각하는 남자들과 포주의 ‘인권’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그 많은 여성이 이런 남성 중심의 관습과 힘에 의해 여전히 주변부로 밀려나 있다. 남성 중심 언론과 지식인 사회는 과연 그늘에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있는가. 대한민국은 여전히 대한 ‘남성’ 공화국이 아닌가?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