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사진
《“나는 오늘 남들에겐 다 있는데 나는 갖지 못한 세 가지를 알았다. 내겐 첫사랑이 없고, 내년이 없고, 주사가 없다.”
- 영화 ‘아는 여자’에서 동치성의 독백 -》
장진 감독의 영화 ‘아는 여자’(DVD·시네마서비스)가 시작할 때 나오는 야구선수 동치성(정재영)의 독백은 영화가 끝날 땐 이렇게 바뀐다.
“오늘, 나에게 없던 세 가지가 생겼다. 내년이 생겼고, 주사가 생겼고, 첫사랑이 생겼다.”
동치성의 태도가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확 달라진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불치병에 걸려 두 달 안에 죽는다고 했던 의사의 진단이 틀렸다는 게 밝혀져서다.
자신이 내년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동치성은 오랫동안 그를 짝사랑해 왔던 여자(이나영)와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그녀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는다. 그냥 ‘아는 여자’일 뿐 이름도 묻지 않던 그가 비로소 그녀를 알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건 자신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다.
영화를 보는 내내 동치성의 로맨스보다 그녀를 알려고 하지 않는 그의 태도가 자꾸 눈에 걸렸다. 아니, 의사가 죽는다고 하면 죽을 사람처럼 살고, 아니라고 하면 살맛이 나나?
의사가 뭐래건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긍정적으로 살라’는 독려는 절망에 빠진 사람에겐 되레 잔인할 수도 있다. 의연하고 긍정적인 사람을 칭찬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이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어떤 진단이 늘 그렇게 명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평균이 개체의 운명까지 예고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정 조건에서 태어난 아이가 범죄자가 될 확률이 60%라면, 그런 환경에 처한 한 아이가 자라서 범죄자가 될 확률이 그 아이의 인생에서도 60%라고 단정해도 되는가?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저서 ‘풀하우스’에서 젊은 시절 불치병에 걸려 ‘8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뒤 통계에 대한 지식을 총동원해 그렇게 될 확률이 얼마인지를 연구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개인은 평균이나 중간값을 나타내는 척도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흔히 보는 종 모양의 표준 정규분포 곡선은 눈을 현혹하기 쉽다. 실제 대부분의 사건, 집단은 그렇게 정연하지 않으며 대부분 비대칭적이다. 가능성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는 ‘8개월도 안돼 확실하게 죽은 경우’가 있겠지만, 다른 한 쪽 끝엔 ‘8개월을 넘어 인간 수명의 한계까지 생존한 경우’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집단의 중심경향성을 보여주는 통계는 개체에 적용될 수 없는 추상적인 숫자일 뿐 아니라 대체로 각 개체의 상황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했다. 개체는 평균이 아니라 변이를 나타낸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범주를 나누고 원인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지만, 무 자르듯 인과관계가 명료한 일은 별로 없다. 사랑도 자꾸 이유를 묻지 마라. 합리적인 이유에 따른 결과가 사랑이 아닐지니. 사랑의 ‘힘’을 보여주기보다 ‘말’만 무성한 이 영화에서도 도둑이 그런 말을 전해준다.
“사랑하면 그냥 사랑 아닙니까? 무슨 사랑 어떤 사랑, 그런 거 어디 있나요.”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