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역의 밀라 요보비치. -사진제공 영화방
▼레지던트 이블 2▼
앨리스(밀라 요보비치)가 봉인했던 유전자 연구소 ‘하이브’가 다시 열린다.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다시 라쿤 시티 전체로 퍼진다. 도시는 폐쇄된다. 도시에 갇힌 앨리스와 특수요원 질(시에나 걸로리)은 바이러스 개발자인 찰스 박사를 찾아내지만, 박사는 실종된 자신의 딸을 찾아와야만 탈출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조건을 내건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좀비들이 확산되고, 무지막지한 괴물 네메시스가 앨리스를 가로막는다.
5일 개봉되는 ‘레지던트 이블 2(Resident Evil: Apocalypse)’는 ‘나무는 보되 숲을 보지 못한’ 영화다. 장면과 장면은 강력한 비주얼로 채워져 있지만, 그런 비주얼들이 모여 정작 말하려는 바가 허기져 보이기 때문이다.
전편 ‘레지던트 이블’의 비주얼 디렉터였던 알렉산더 윗의 감독 데뷔작이라서 그럴까. 이 속편은 홍콩 액션 누아르의 ‘할리우드 SF 버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슬로 모션을 통해 극단의 비주얼을 보여준다. 총을 툭 떨어뜨리고선 이 총이 땅에 닿기도 전에 잽싸게 다시 붙잡아 총알을 날리거나, 활처럼 허리를 뒤로 구부려 뒤쫓아 오는 적을 쏘거나, 빌딩 외벽을 옥상에서 1층까지 거꾸로 내달리는 장면은 특히 그러하다.
문제는 그것들의 의미다. 전편(폴 W S 앤더슨 감독)은 유전자 변이된 앨리스의 존재론적 고민과 함께 슈퍼컴퓨터와의 두뇌 게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여기에 좀비를 등장시켜 호러적 요소를 보완했다. 하지만 이 속편은 ‘머리로 생각할 거리’가 빈약하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좀비들은 가슴을 섬뜩하게 하지만, 유머를 남발하는 이 영화는 필요 이상 발랄하다. 괴물 네메시스와 앨리스의 존재론적 고민은 막판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워진 까닭에 영화를 더 ‘그럴 듯하게’ 보이게 하지 못한다.
이 영화는 여전사 질을 등장시켜 앨리스와 ‘여성 투 톱’을 만듦으로써 기존 ‘남녀 투 톱’ 모델을 대체한다. 또 다수의 주변 캐릭터를 비중 있게 등장시킨다. 그러나 집중력 부족 탓에 앨리스를 비롯한 누구의 캐릭터도 제대로 떠오르지 못한다. 괴성을 내지르던 밀라 요보비치의 야생적 매력은 줄었다.
아무리 “1편은 ‘무엇(What·주제의식)’으로 먹고 살고 속편은 ‘어떻게(How·스타일)’로 먹고 산다”지만, 이 영화가 결정적으로 잊은 게 있다. 액션의 ‘스타일’은 관객의 눈에 달려 있지만 액션의 ‘파괴력’은 관객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18세 이상 관람 가.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
다니엘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왼쪽)과 오드리 역의 줄리안 무어. -사진제공 인필름앤컴
논리적인 오드리(줄리안 무어)와 직감적인 다니엘(피어스 브로스넌)은 최고의 이혼 전문 변호사들. 법정에서 사사건건 맞서 싸운다. 록 스타 부부가 낸 이혼소송 변론을 위해 아일랜드로 각기 출장을 떠난 이들은 우연히 만나고, 축제에 빠져 만취한 상태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결혼한다. 다음날 서먹한 마음으로 미국 뉴욕으로 돌아온 이들은 다시 법정에 마주 선다.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영화 ‘사랑에 빠지는 아주 특별한 법칙(Laws of Attraction)’의 총제작자라는 사실만 알면 이 영화에 대한 세 가지 의문은 단숨에 풀린다.
첫째, 재혼도 아닌 초혼을 다루는 연애물인데 이렇게 나이든 남녀 배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 이유는 뭘까. 정답. 피어스 브로스넌(51)이 총제작자와 주연을 겸했으며, 그가 자신과 연배가 맞는 줄리안 무어(44)를 직접 캐스팅했기 때문이다. 둘째, 여느 로맨틱 코미디와 달리 남녀가 결혼을 후딱 해버리는 이유는 뭘까. 정답. 나이든 남녀 배우가 결혼을 둘러싼 실랑이를 벌인다는 것 자체가 구차해 보이기 때문이다. 셋째, 하고많은 여행지 중에 왜 하필 아일랜드에서 이들은 사랑에 빠지는 걸까. 정답. 총제작자인 피어스 브로스넌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사랑에…’에는 진부해 보이는 요소들이 많다. ‘헛똑똑이’인 여자와 ‘속으론 진국’인 남자라는 캐릭터 궁합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위의 세 가지 대답은 결과적으로 이 진부한 영화에 차별성과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가 된다. 두 배우의 연기는 타오르진 않지만 따스하고 무게감 있으며, 이들이 빨리 결혼해 버림으로써 호흡을 빼앗긴 관객은 이후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에 외려 흥미진진한 태도로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웬만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못지않게 비현실적이만, ‘섹스부터 하고 보는’ 또는 ‘결혼부터 하고 보는’ 요즘 세태 속에서 ‘현실’의 묘한 구석을 찌르기도 한다. ‘슬라이딩 도어즈’ ‘쟈니 잉글리시’를 연출한 피터 호위트 감독. 1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