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미국 대선에서 일부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이 섣부르게 출구조사와 투표 직전 여론조사 결과를 밝혔다가 또 망신을 당했다. 2000년 CNN 등 미 방송과 신문사들이 투표가 채 끝나기도 전 출구조사를 근거로 앨 고어 후보의 승리를 예측했다가 정정보도를 하는 사태가 재연된 것.
▽3분의 1의 정보=존 케리 민주당 후보의 우세나 승리를 점쳐 오보를 낸 매체들의 공통점은 또다시 ‘초기 출구조사’ 결과를 그대로 믿었다는 것.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일단의 정보만을 근거로 판단을 내린 것이 화근이었다.
전국선거폴(NEP)에서 출구조사를 담당한 조지프 렌스키는 “초반 출구조사는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일 때 결과를 보도하는 것과 같다”면서 “이 상태에서는 정보의 3분의 1만을 갖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 마감 시점의 출구조사는 초반과 달랐다.
출구조사의 기본원칙을 어긴 것도 오보의 원인. 출구조사에서 1%포인트 안팎의 초경합 상황인데도 ‘판단 불능’으로 처리하지 않고 ‘우세’로 판정하는 오류가 많았다.
▽‘현직자 원칙(incumbent rule)’=투표일 일주일 전까지 상당수 여론조사에서 뒤졌던 케리 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예상이 나온 배경은 ‘현직자 원칙의 이론’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이 이론은 현직자와 야당 도전자가 2파전으로 싸울 경우 여론조사에 나타난 부동층의 실제 표심이 도전자에게 있다고 보는 것.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부동층에서 현직과 도전자에 대한 실제지지 비율은 적게는 4 대 6, 많게는 2 대 8로 갈리며 이에 따른 전체 지지율 변화는 1∼2%포인트로 보고 있다.
이런 경향은 1990년대 이후 연방 상하원이나 주지사 선거에선 약해졌으나 현직 대통령이 출마하는 대선의 경우 갈수록 뚜렷해 여론조사 종사자들에겐 ‘대선의 철칙’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대선에선 투표일 직전 터진 ‘빈 라덴 비디오테이프’라는 돌발변수가 안보를 중시하는 보수층을 결집시켰고 그 결과 ‘현직자 원칙’이 깨졌다고 보고 있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