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제국을 건설한 사람들/윌리엄 브레이트·배리 허쉬 지음 김민주 옮김/528쪽 1만7000원 미래의 창
1986년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트리니티대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18명의 학자들을 초청해 ‘경제학자로서 나의 진화’를 주제로 연속 강연회를 가졌다. 폴 새뮤얼슨, 밀턴 프리드먼, 조지 스티글러, 제임스 헤크먼, 로렌스 클라인, 아서 루이스, 제임스 뷰캐넌, 게리 베커, 로버트 루커스 등 전설적인 경제학자들은 이 자리에서 자신의 생애와 경제사상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한 강연을 했다. 그리고 매사추세츠공대(MIT) 출판부가 당시 강연내용을 묶어 책으로 펴냈다.
‘나는 왜 경제학을 택했는가.’
학자들은 경제학이 현실세계의 해결에 유용하리라는 생각에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대학을 졸업하던 해 불어 닥친 대공황을 겪으면서 공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은 뭘까, 실업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의문을 풀고 싶었다고 한다. 게리 베커는 사회의 불평등과 인종차별, 계급차별을 목격한 뒤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노벨 경제학상 상장.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묶은 이 책은 견고한 학문의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사진제공 미래의 창
스승이 좋아서 선택한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타고난 경제학자는 아니다. 그리고 나는 경제학자로 진화하지 않았다. 대신 어느 지적 전환점에서 빛을 본 후 갑자기 만개했다. 나는 프랭크 나이트(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에 의해 경제학으로 개종(改宗)되었다.’ (제임스 뷰캐넌)
‘밀턴 프리드먼의 토론 방식은 정말로 특별했다. 프리드먼은 자신과 토론하는 학생이 어떤 문제의 사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거치도록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학생을 토론과정에서 지쳐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마음속으로 설득할 수 있기를 바랐다.’ (로버트 루커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쟁쟁한 학자들의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라 이들을 낳은 지적 토양에 대한 성찰이다. 학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계적으로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하는 것은 △개개인의 행운이나 노력 못지않게 삶과 학문에서 존경받을 만한 많은 스승들과의 관계 △치열한 경쟁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깨닫게 하는 게 목적인 토론 문화 △그 속에서 피어나는 끈끈한 동료애 △여기에 장학금 혜택까지 맞물리는 다양한 지적 네트워크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에 등장하는 강연자의 절반 이상이 미국 시카고대 출신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한때 경제학의 이단으로 여겨지던 시카고대는 비판과 도전에 스스로를 과감하게 개방함으로써 새로운 경제학의 메카가 되었다.
시카고대에 자극받은 하버드대 등도 최고의 인재들을 끌어 들이고 양성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 정책을 사용했다. 여기에 정부의 각종 연구지원책도 뒤따랐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삶을 통해 견고한 학문의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해 내는 교육시스템의 산물임을 강조하고 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