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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시간이 멈춘 곳…’ 펴낸 변호사 차병직씨

입력 | 2004-11-05 17:00:00


차병직 변호사(45·사진)는 독특하다. 10여년 전 컴퓨터가 막 보급될 무렵 그는 워드프로세서를 들고 다니며 글을 썼다. 그러나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가 보편화한 지금, 그는 ‘차병직 표’ 원고지에 글을 쓴다. 고집이다.

그의 책 ‘시간이 멈춘 곳 풍경의 끝에서’(도서출판 강) 역시 독특하다. 그가 후기에도 썼다시피 ‘여행기도 소설도 에세이도 아닌 모호한’ 책이다. 그는 “남들과 똑같이 개인적 경험을 늘어놓는 글을 또 보태기 싫어서 조금이라도 다른 형태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카프리에서는 그곳에서 혁명의 꿈을 키운 러시아의 문호 고리키와 혁명가 레닌의 이야기가 연결되고, 1만7000년 전 동굴벽화가 있는 프랑스 라스코 동굴에서는 40여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는 화가 이희세를 떠올린다. 이씨는 라스코 동굴의 훼손을 막기 위해 근처에 만든 모조 동굴벽화에 붉고 검은 들소 두 마리를 그렸다. 풍경과 시간과 기억이 교차한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난다는 거죠. 노는 겁니다. 처음 여행할 때는 책이나 그림, 사진에서 본 것을 확인하는 호기심 충족 차원의 일이 많지만, 지금은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이야기와 재미를 얻습니다. 동행자와의 긴 대화를 통한 교감은 부수적인 수확이지요.”

그는 1937년 소련 정부에 의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이 새로운 정착지에서 겪은 경험이 말하는 사람들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사실은 있으나 진실과 거짓은 분별하기 힘들다. 거짓과 진실이 서로 얽혀 진실을 만들어낼 뿐이다’(26쪽)고 토로한다.

“과거 법을 공부할 때는 ‘실체적 진실’은 당연히 존재하며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대단한 목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허망한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습니다. 진실이란 정치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아닐까….”

그에게 가보고 싶은 곳을 물었다. 그는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고 싶다”면서 두 곳을 들었다. 하나는 언제 물에 잠길지 모르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공화국이고, 다른 하나는 얼음의 섬 그린란드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