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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브라보! 정명훈 말러 대장정… 佛 열병속으로

입력 | 2004-11-05 18:23:00


2000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뒤 프랑스 음악팬들에게 절대적 지지와 존경을 받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그가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했다. 10월 27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과 미완성 교향곡 10번의 1악장 아다지오로 시작된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는 이틀 뒤인 29일 교향곡 2번 ‘부활’ 연주로 이어졌다.

말러 교향곡 전곡은 연주시간만 12시간이 소요되는 대작업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라고 하더라도 전곡 연주를 위해서는 악단원의 동의를 받아내는 등 수년간 암중모색을 해야 하고 악단 이사회를 설득하는 사투에 가까운 작업도 벌인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클래식 음악 전문지인 ‘르 몽드 드 라 뮈지크’에서는 이번 전곡 연주 착수에 즈음해 말러 교향곡 관련 기사에 16쪽을 할애했으며, ‘르 피가로’지에서도 이번 말러 교향곡 연주를 ‘음악계의 일대 사건’으로 다루었다.

29일 연주회를 정명훈은 모두 악보를 보지 않는 암보(暗譜)로 지휘했다. 소프라노 크리스틴 셰퍼, 메조소프라노 페트라 랑 등 최근 유럽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호화 성악진이 출연했다. 80여분의 연주시간이 소요되는 ‘부활’ 교향곡을 정명훈은 첫 음부터 마지막 음까지 시작과 끝이 한순간인 것처럼 연주했다. 지휘 동작은 한층 간결해졌지만 정명훈 특유의 ‘기(氣)’는 더욱 깊고 강렬했다. 오케스트라의 총주(總奏) 사인을 주기 위해 지휘봉을 머리끝까지 들어올릴 때는 마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거목처럼 보였다. 청중의 기립박수보다도 연주를 마치고 난 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발을 구르며 지휘자에게 보내는 열렬한 갈채가 더 인상적이었다.

청중 속에서는 특히 일본인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에 비해 한국인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 점은 실망스러웠다고나 할까.

정명훈과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2월 10일 3번 교향곡을 연주하며, 내년 6월 24일 9번 교향곡 연주로까지 이어진다. 다른 곡들은 샹젤리제 극장에서 연주하지만 ‘천인(千人)’ 교향곡이라 불리는 교향곡 8번만은 그 규모 때문에 생드니 바실리크 대성당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정명훈은 파리에서의 전곡 연주 일정 사이사이에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도 말러 교향곡 연주 일정을 이미 잡아놓았다. 인터뷰에서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기 위해 지휘자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는 정명훈이 파리는 물론 유럽의 음악애호가들을 또다시 말러 열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파리=김 동 준 음악평론가·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음악평론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