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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대통령 ‘李총리 파면 요구’ 묵묵부답

입력 | 2004-11-05 18:26:00

쌓여있는 법안들이해찬 국무총리의 한나라당 폄훼 발언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발로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5일 국회의 한 상임위원회에 처리하지 못한 법안들이 쌓여 있다. 김경제기자


국회 파행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5일 MBC라디오 ‘여성시대’에 출연해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의 최근 한나라당 폄훼 발언 등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자 “야당을 무시했다”며 반발했다.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는 이날 오후 긴급 소집된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노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국민들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또 “대통령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행정부도 국회를 우습게 알게 돼 국회 상임위 활동이나 국정감사가 아무 소용도 없게 된다. 한나라당으로선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며 장외투쟁 등의 강경한 대응에 나설 방침임을 내비쳤다.

그는 국회 정상화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정부가 이렇게 나온다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덕룡(金德龍) 원내대표도 기자 간담회에서 “안하무인이다. 정말 세게 나가야겠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라며 확전(擴戰) 의사를 밝혔다.

남경필(南景弼)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열린우리당 이종걸(李鍾杰) 원내수석부대표의 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노 대통령의 라디오 출연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한나라당 내의 분위기는 강경론과 유화론이 혼재된 양상이었다. 일부 소장파와 초선 의원들은 ‘무조건 등원’ 의견을 지도부에 전달했다. 또 이 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국회에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형식을 밟자는 아이디어를 내놓는 초선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이 총리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을 배려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탓에 이 같은 유화론은 힘을 잃어버렸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이 총리 파면 요구에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이 한나라당의 영남권 보수 의원 등 대여(對與) 강경론자들을 자극해 ‘일전불사(一戰不辭)’의 분위기가 당 전체에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전여옥(田麗玉) 대변인이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대통령이 (라디오에 출연해) 경제난과 국회파행으로 초상집 같은 상황에서 개그 한마당을 했다”고 냉소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 같은 당내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당 지도부로서는 여권의 사과 등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등원할 경우 여당이 추진 중인 ‘4대 법안’ 처리 과정에서 주도권을 잃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여당측에 밀리는 것도 문제지만, 당 내에서도 강경 보수 의원들의 지도부 공격으로 대여 전선의 전열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만 국회 파행이 장기화될 경우 여론이 정부여당뿐만 아니라 한나라당도 비판하는 쪽으로 흐를 개연성이 변수다. 또 당 내엔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국회 운영과 대여 투쟁을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따라서 다음주 초 열린우리당이 단독 등원해 민생법안심의에 착수하면서 “야당이 국회를 내팽개쳤다”고 공격할 경우 한나라당 내 유화론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열린우리당 김영춘(金榮春) 원내부대표는 이날 사견을 전제로 “다음주에도 한나라당이 등원하지 않으면 열린우리당은 민주당 민주노동당 등과 논의해 국회를 열 수도 있다”고 압박했다.

한편 한나라당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은 이날 ‘서울 보신각로터리클럽’ 강연회에서 “노 대통령은 특정 세력의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대통령으로 돌아오기 위해 열린우리당 당적을 포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