批는 手(손 수)와 比로 이루어졌는데 比는 소리부도 겸한다. 手는 손의 형상을 그렸고, 比는 갑골문(왼쪽 그림)에서 몸을 굽히고 손을 위로 받든 두 사람이 나란히 선 모습에서 ‘나열하다’나 ‘견주다’의 뜻을 그려 냈다.
評은 言(말씀 언)과 平의 합성자인데 平 역시 소리부를 겸한다. 言은 갑골문에서 혀(舌·설)에다 추상부호인 가로획(一)이 더해진 모습으로, 혀에 의해 만들어지는 ‘말’을 형상화했다. 平의 금문(오른쪽 그림) 자형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자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설문해자’는 ‘말이 고르게 퍼지는(八) 것’을, 혹자는 나무를 평평하게 깎는 손도끼를, 또 다른 이는 저울을 그렸다고도 하지만 모두 자형과 그다지 일치하는 것 같지 않다.
그래서 批評은 물건 등을 손(手)으로 나열해(比) 놓고 어느 것이 더 낫고 못한지를 언어로써 가려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비평의 언어는 자신의 이해관계나 유불리에 좌우되지 않는, 편견과 치우침이 없는 공평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공평무사한 어휘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사회 그 자체가 무엇보다 인간 간의 관계를 근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批評은 종종 ‘評論’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평론이란 문학이나 음악이나 회화 작품 등이 순서에 맞고 구도에 맞아 조화를 잘 갖추었는가, 즉 그 질서와 구도가 제대로 잡혔는가를 말로 평가하는 것이다.
評은 앞의 설명처럼 ‘공평한 언어’를 말하며, 論은 言과 侖으로 구성되었다. 侖은 금문에서 윗부분은 입을, 아랫부분은 대를 엮어 놓은 모습을 하여 管(관)이 여럿 달린 피리(약·약)와 닮았다. 아마도 약과 같은 악기를 불 때의 條理(조리)나 순서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論은 사리를 분석하여 조리 있게(侖) 설명함(言)을 말한다.
평론은 물론 정치나 사회에 대한 論評일 수도 있다. 하지만 評과 論이 결합된 評論은 평하는 구체적인 대상이 빠졌기에 그 언어가 담아내는 내용이 좀 더 보편적이며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批와 評이 결합된 批評은 구체적 대상을 손으로 나열해 놓고 평하는 것이기에 그 내용은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기 마련이다. 대상이 구체화되었기에 사용 어휘도 좀 더 정확하고 세밀해야 하는 동시에 구체적 대상 앞에서 이해와 관계 지어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발언을 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하영삼 경성대 교수 ysha@k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