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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언론법안’]親與매체 선별지원 ‘權言유착’ 우려

입력 | 2004-11-07 18:06:00


재정이 열악한 신문이나 인터넷언론이 정부로부터 돈을 지원받을 경우 정부를 제대로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을까. 반대로 정부는 비판적인 신문이나 인터넷언론에도 공평하게 돈을 나눠주려 할까. 답은 뻔하다. 세상이치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여당이 조성하려 하는 ‘신문발전기금’은 ‘언론의 선악과(善惡果)’가 될 것이다.

○ 돈 줄 곳과 안 줄 곳이 정해져 있다

여당의 정기간행물법 개정안(신문법안)을 들여다보면 신문발전기금을 어디에 지원하려고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이 기금의 첫 번째 용도가 ‘여론의 다양성 촉진’인 만큼 여당이 여론을 독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은 지원대상에서 배제하려 할 것이다. 지난달부터 시행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따라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대상이 되는 지방지도 제외될 것으로 예상된다.

남는 것은 중소 중앙지와 인터넷언론뿐이다. 결국 세간에서 ‘친여(親與)매체’로 분류하는 신문이나 인터넷언론이 주된 지원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점유율이나 광고비율 등이 일정기준을 넘어서면 지원대상에서 배제토록 한 신문과 달리 인터넷언론은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고 있어 정부의 재량권이 더 크다.

○ 정부 뜻대로 움직일 ‘한국언론진흥원’

신문발전기금의 관리자는 문화관광부 장관.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한국언론진흥원의 이사 9명에 대한 위촉권도 문화부 장관에게 있다. 그중 2명의 추천권을 시민단체에 주고 있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문화부 장관이 직접 위촉하는 3명과 시민단체에서 추천하는 2명의 코드만 맞으면 얼마든지 정부 뜻대로 이사회를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신문법안은 영세 신문사의 공동배달과 같은 유통구조 개선사업에도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독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사업에도 기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법안대로라면 독자의 권익보호를 표방한 시민단체들도 정부로부터 기금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럴 경우 시민단체들의 ‘관변단체화’가 우려된다.

○ 국고지원을 금지한 독일 헌재 판결

심재철(沈載喆·언론학) 고려대 교수는 “정권의 입맛에 맞는 매체만 지원하고 비판적인 매체는 차별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최대권(崔大權·헌법학)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금 운영이 공평하지 않으면 정부가 언론을 간접적으로 규제하는 것이다”고 지적한다. 정동채 문화부 장관이 최근 국회에서 공개적으로 동아 조선일보를 비난한 것도 꺼림칙하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제77차 판결은 우리에게도 참고가 된다. ‘언론사는 사기업으로서 상호간에 자유롭게 정신적 경제적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므로, 국가나 공공기관이 정치적으로 간섭하는 것을 배제하듯 경제적으로 관여하는 것도 금지한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1994년부터 공영방송을 제외하고는 국고지원을 하지 않는다.

○ 영국의 결론 또한 ‘정부 불개입 원칙’

독일 헌재는 1998년 제80차 판결에서 신문사에 대한 우편서비스 특혜도 없앴다. 이 판결은 ‘국가가 일부 신문사에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시장경제체제의 자유경쟁을 위반하는 것이며, 국가개입과 검열을 금지한 기본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1970년 제정된 미국의 ‘신문보호법’은 여러 신문이 사업을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은 반(反)독점법의 적용대상에서 배제함으로써 중소 신문의 담합을 합법화해 주는 정도였다. 영국도 1947부터 1977년까지 세 차례나 왕립언론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비롯한 언론대책을 검토했지만 결론은 ‘불개입 원칙’이었다.

이들 국가가 정부의 직접 지원을 꺼리는 것은 인위적인 언론시장 개입은 언론자유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 지원하더라도 정부 입김 배제해야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신문을 ‘공공재’로 보고 정부가 직접 지원을 하지만, 기금 조성 및 지원대상 선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대표적 사례로 드는 스웨덴의 언론보조금관리국은 주요정당을 대표하는 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보조금 할당은 합의된 기준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진다.

네덜란드 ‘프레스펀드’의 주된 재원은 방송의 광고비와 TV수신료. 2001년 TV수신료가 폐지되면서 이 부분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지만 기본적으로 방송사의 출연금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허행량(許倖亮·언론학) 세종대 교수는 “여당의 신문법안은 정부의 출연금 등으로 기금을 조성토록 했는데, 독자의 외면으로 한계상황에 이른 매체에 혈세가 쓰이는 것을 국민이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의 비싼 대가

신문발전기금은 경영난을 겪는 신문사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부작용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김주선(金周善) 전 한국지역신문협회 부회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계도지 예산을 보조받는 신문과 그렇지 않은 신문은 보도성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참언론대구시민연대는 3일 성명을 내고 “지자체는 치적 홍보와 단체장 재당선을 위해 언론을 활용하려 했다”며 “(계도지 예산과 같은) 신문에 대한 지원을 없애는 것이 관언(官言)유착 관행을 청산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각 지자체는 올해 110여개 지방신문에 130억여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여당이 조성코자 하는 신문발전기금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박현진기자 witness@donga.com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