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타락하고 나라가 혼란할수록 한 가닥 희망을 사법부에 거는 국민이 많다. 그러나 이 희망은 곧 실망으로 변하고 만다. 사법부도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과연 정치적인 영향에서 자유로운가.
정치권이 아무리 부패하고 부정과 비리의 온상이라도 독립한 사법부가 제 구실을 하면 정치권은 정화될 수 있다. 우리 정치권이 아직도 부패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정과 비리의 만화경처럼 인식되고 있는 데는 사법부의 책임이 크다. 최근의 한 통계가 보여주듯 유독 정치인에게는 솜방망이 처벌을 해 온 불공정한 사법 관행이 정치권의 부정과 비리를 근절시키지 못한 한 원인이다. 정치인의 부정과 비리에 대해 온정론 대신 추상같은 처벌을 해서 예방적인 효과를 발휘했더라면 우리의 정치문화는 훨씬 개선됐을 것이다. 비슷한 정치적인 사건의 처벌이 균형을 잃어 고르지 못한 것도 문제가 많다. 사법부가 정치적으로 판단한 결과로 비치기 때문이다.
▼정치색 짙은 정치권비리 판결▼
전관예우를 비롯해 집단이기적인 낡은 관행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판사가 변호사로부터 성(性) 접대를 받아 파문을 일으킨 사건도 그래서 생긴다. 왜 잊을 만하면 이런 일이 자꾸 되풀이 되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권에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내부적으로 낡은 관행을 떨쳐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선거재판도 그렇다. 우리 선거문화를 후진적이라고 탓하기 전에 사법부의 선거재판 지연을 먼저 꾸짖어야 한다. 엄연히 법으로 정한 재판 기간의 강행규정을 지키지 않고 선거재판을 몇 년씩 끌다 보면 국회의원의 임기는 거의 끝나 버리기 일쑤다. 선거법을 어기고 당선된 범법자가 몇 년씩 국회의원 행세를 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죄인에게 훈장을 달아주는 것이어서 사법부의 중대한 직무유기다. 선거범의 재판기간을 1년의 단기간으로 못 박은 입법정신이 사법부의 직무유기로 훼손된다면 그것은 하나의 묵과할 수 없는 주권 침해다.
4월 총선거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선거사범들을 법정기한 내에 재판해서 옥석을 가리는 일은 선거권의 실효성을 보장해주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선거사범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궐석재판제도까지 새로 도입한 마당에 사법부는 이제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이번만은 선거재판의 법정시한을 꼭 지켜야 한다. 당선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솜방망이 양형(量刑)의 관행을 과감히 떨치고 선거재판의 획기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사법부가 바로 서기 위해서는 법조인 전체의 의식 개혁과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법조인들은 법조 직업에 대한 진입 관문의 공통성 때문에 강한 동류의식을 갖고 상호 의존적 협력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집단이기적인 경향을 보여 왔다. 법조 직업에의 진입 장벽을 높게 쌓으려고 사법시험 합격자 수를 1000명선에 묶으려고 고집 부리는 것이나, 비리가 발견된 법조인을 형식적으로 가볍게 징계하는 관행이 그 단적인 예다. 변호사가 너무 많아지면 안 된다고, 별 이유를 다 끌어들이지만 변호사가 늘어 경쟁이 심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 본심이라고 봐야 한다. 우리 시장경제질서에서 모든 전문직업 분야에 냉혹한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는데 왜 유독 법조 직업에만은 경쟁의 원리가 적용되면 안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법조인 동류의식 또 물의 빚어▼
법조계도 이제 진입 장벽을 허물고 적자생존의 시장원리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이 변호사 직업을 선택함으로써 많아진 변호사의 양이 법조인의 질을 향상시키는 획기적인 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판사 검사로 재직하다 옷 벗고 변호사로 개업하는 관행보다는 변호사로 활동하다 판사 검사로 발탁돼 평생을 재직하는 패턴으로 바뀌는 것이 법조계의 도덕성을 높이고 우리 사법문화의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사법부만이라도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국가기관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