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은 민영방송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반면 경영이 방만하다는 비판을 받아온 공영방송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방송법 개정안도 신문법안처럼 특정방송을 길들이기 위한 ‘표적입법’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지배주주 변경승인’ 조항의 타깃은?
방송법 개정안에 신설된 ‘최다액출자자 등 변경승인’ 조항부터가 특정방송을 겨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KBS는 100% 정부출자 기관이므로 지배주주가 변경될 일이 없고, 방송문화진흥회가 지분의 70%를 보유하고 있는 MBC도 마찬가지다. 지상파 3사 중 이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될 곳은 SBS뿐이다.
개정안은 지상파방송사업자에 대한 재허가추천 심사기준에도 ‘주식 또는 지분 소유의 변경이 불가피했는지 여부’를 추가했는데, 이 역시 SBS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원회가 최근 지상파방송사업자에 대한 재허가추천 심사를 하면서 소유와 경영의 미분리 등을 이유로 SBS에 대한 결정을 미루고 있는 것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과도한 제한과 모호한 기준은 위헌
방송법 개정안은 △주식 또는 지분의 처분으로 방송사업자의 최다액출자자가 바뀔 경우 △출자자가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등에 해당되면 방송위 승인을 얻도록 했다. 승인을 얻지 못한 주식이나 지분은 의결권 행사가 금지된다. 김동욱(金東旭·방송정책학) 서울대 교수는 “헌법에 위배될 정도로 민영방송 사업자영역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위의 승인심사 기준으로 ‘방송의 공적 책임, 공정성, 공익성 실현 가능성’ 등을 들고 있는 것도 위헌 소지가 있다. 박선영(朴宣映·언론법학) 가톨릭대 교수는 “심사기준이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과 포괄위임입법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재허가 못 받은 방송사는 강제수용?
방송법 개정안은 또 3년마다 실시되는 재허가추천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방송사 토지 등의 처분에 관한 조항도 신설하고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르도록 했다. 철도나 공항 건설 등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할 때 적용되는 이 법에 따르도록 한 것은 재허가를 받지 못한 방송사업자의 재산을 신규 사업자에게 사실상 강제로 넘기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게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강경근(姜京根·헌법학) 숭실대 교수는 “헌법상 재산권의 제한은 공익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최소한의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며 “방송법안의 해당조항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KBS에 대한 감사원 권고엔 눈감고…
감사원은 5월 KBS에 대한 특감결과를 발표하면서 국회의 결산승인 전에 감사원의 결산심사를 받도록 방송법을 개정할 것을 방송위에 권고했다. 또 예산편성시 정부투자기관 예산편성지침을 준용하도록 방송법에 명시할 것을 권고했다.
감사원이 KBS에 대한 외부통제 강화를 권고한 이유는 정부가 자본금을 전액 출자하고 준조세 성격인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가 구조조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 그러나 방송법 개정안은 감사원 권고를 외면했다. 감사원은 KBS 이사회 권한 강화와 같은 지배구조 개선방안도 내놓았으나 이 또한 반영되지 않았다.
●방송위 ‘국고배당’ 제안도 묵살됐다
그뿐만 아니라 KBS는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남기지만 국고배당을 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익잉여금은 4242억여원에 이른다. 이에 따라 방송위는 3월 ‘KBS 이익잉여금을 국고에 배당하는 것이 타당하므로, 현재 이사회 결정사항인 이익금 배당을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방송법 개정안은 이것도 묵살했다. 방석호(方碩晧·언론법학) 홍익대 교수는 “KBS의 지배구조상 사장이 바뀌면 모든 것이 쉽게 바뀌게 된다, 인사청문회를 도입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거꾸로 부담금과 지출용도만 늘려
기획예산처는 8월 ‘핵심사업 위주로 재편하면 막대한 지출을 절감해 준조세에 해당하는 법정부담금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방송발전기금에 대한 평가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방송법 개정안은 거꾸로 지출용도를 확대하고 부담금을 늘려 놓았다.
우선 지상파방송사로부터 걷는 기금의 상한선을 방송광고 매출액의 6%에서 8%로 올렸다. 기금의 용도도 ‘그 밖에 방송진흥과 시청자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위원회가 의결한 사업이나 활동’ 등을 추가됐다. 용도가 애매하면 그만큼 운용은 허술해질 가능성이 크다.
●불합리한 징수율 산정과 차별논란
더욱 문제는 한해 조성규모가 2000억원이 넘는 기금의 징수율 산정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SBS는 방송광고 매출액의 5.45%를 기금으로 내놓고 있다. MBC 징수율은 5.25%이고 KBS와 EBS는 3.5%, 기타 지역 및 종교방송은 4.37%다.
기획예산처는 합당한 근거가 없으므로 SBS와 MBC의 징수율을 내려 KBS나 EBS와의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으나 방송위는 차등징수율에 대한 합리적인 산정기준조차 제시하지 않고 있다. 부담금을 이익금이 아닌 매출액에 대해 부과하는 것도 문제다. 적자를 내고도 부담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법 개정안의 쟁점조항조항내용전문가 의견최다액 출자자변경 승인방송사업자의 최다액 출자자가 변경될 경우, 대통령령이 정하는 중요한 경영사항에 대한 계약을 체결할 경우 방송위원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민영방송사업자 영역을 과도하게 제한재허가 취소후속조치재허가를 받지 못한 자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토지 등을 수용해줄 것을 청구할 수 있다 과잉금지원칙에 위반한 재산권 침해방송발전기금상한선 상향 조정위원회는 지상파 방송사업자로부터 방송광고매출액의 100분의 8 범위 안에서 기금을 징수할 수 있다준조세에 해당하는 법정부담금을 줄이라는 기획예산처의 평가 결과 무시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박 용기자 par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