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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서현]문화가 도시를 만든다

입력 | 2004-11-09 18:35:00


이스탄불은 빛나는 도시가 아니었다. 비잔틴의 모자이크에는 이슬람의 금욕적 문양이 덮여 있었다. 그 위로 회색 먼지가 두꺼웠다. 무심한 여행객의 눈에 비친 도시는 어둡고 신비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삼촌을 떠올리며 포도주를 안겨 주던 사람도, 양탄자를 사라고 을러대던 사람도 모두 검은 수염의 아저씨들이었다.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은 침묵 속에서 부유하듯 돌아다녔다.

▼소설 ‘탁류’가 그려낸 군산▼

이런 도시에 최근 화려한 색채가 더해졌다. 먼지를 걷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건물이 아니고 소설에 의해 드러난 색채였다. ‘내 이름은 빨강’. 16세기의 도시와 그림을 치밀하게 그려 나간 이 소설은 단지 터키의 문학적 성취에 그치지 않는다.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얻게 된 중요한 문화적 자산이다. 건물에만 관심 있던 여행자에게 회색빛이던 도시는 이제 빨갛고 파란 속살을 지닌 도시로 변모했다. 그 색을 보여 준 도구가 바로 소설이다.

도시는 건물로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소설 음악 영화에 담긴 도시의 모습은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도시가 지닌 문화적 자산이고 도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다. ‘토지’를 존재하게 하는 것은 하동이고, ‘탁류’를 의미 있게 하는 것은 군산이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봉평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건물이 아닌 소설 때문이다.

16세기 이스탄불의 화원들은 술탄에게 바칠 세밀화를 그렸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18세기 조선의 화원들은 어람용 도성도를 그렸다. 이들에게도 지도 제작은 목숨이 걸린 문제였을 것이다. 그 지도에는 도성의 길과 개천들이 붉고 푸른색으로 빼곡하게 그려져 있다.

지금 개천은 복개되었고 길은 여기저기가 지워졌다. 그러나 이 지도에 담긴 길로서의 도시의 모습은 아직 놀랄 만큼 많이 남아 있다. 궁은 학교, 병원, 관공서로 변했지만 이들이 바뀌어 나간 역사는 소멸한 왕가의 이야기처럼 비감하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이 도시의 역사적 흔적이고 증언이다.

우리의 도시에서 역사는 어디에 있느냐고들 묻는다. 관광엽서의 사진처럼 도시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물을 수 있다. 도시의 역사와 가치는 건물만이 아닌 문화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겸재(謙齋)의 인왕제색도가 없었다면 인왕산의 의미는 지금 같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걸고 도성도를 그린 화원들의 붓끝을 이 도시 안에서 느껴 보지 않은 채 역사의 실체는 사라지고 숫자만 남았다고 단언할 수 없다.

도시는 이전 시대의 흔적을 박제로 보존하는 창고가 아니다. 자기가 거기 살지 않는다고 해서 비가 새는 집을 그대로 두라고 목청을 돋울 수도 없다. 도시는 살아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제안을 통해 계속 변화해 나가야 한다. 좋은 도시는 우리의 야심이어야 한다. 그러나 도시는 선택받은 강자에게 맡겨진 스케치북이 아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찢어 버리고 새로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도시는 덧칠해 가면서 발전시켜야 한다. 들춰 보면 과거의 증언이 들려야 한다.

터키의 세밀화가들은 기계적 투시도법을 앞세운 화풍에 위협받았다. 조선의 화원들이 그린 도시는 지금 계량적 도시계획의 위협을 받고 있다. 넓은 자동차길과 크고 높은 건물로 이뤄진 도시의 그림은 우리의 도시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도시역사 무시한 재개발▼

세운상가 주변 블록의 대규모 재개발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 현상공모에 외국 건축가들만 초대했다는 불평도 들렸다. 바라는 만큼은 아니어도 기존 도시조직을 배려한 흔적이 보이는 계획안이 1등 당선작이 됐다. 그러나 사막에 도시를 짓듯 새 도화지에 그린 계획안을 낸 건축가들도 입상하고 실제 설계의 참여 자격을 받았다. 서울에 대한 이들의 무지와 과감함이 두렵다.

도시가 사라지면 이들을 담았던 문화는 정말 박제가 된다. 좁고 지저분해 보이는 종로의 골목길에는 흰 구두, 흰 양복을 차려 입은 원로가수의 낭랑한 노래가 묻혀 있다. 그래서 이 길이 더 애절하다. “보신각 골목길을 돌아서 나올 때엔 찢어 버린 편지에는 한숨이 흐렸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