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시인 이상은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이 없다는 것만큼이나 허전한 일이다”라고 했다. 옛날의 비밀은 가슴에 묻어두거나 공책에 적어 장롱 속에 꼭꼭 숨겨뒀겠지만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서로 연결된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비밀이 디지털 신호로 컴퓨터 속에 저장돼 있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디지털 신호는 왕왕 개인의 비밀까지도 순식간에 사이버 공간에 노출시킨다.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는 일이 너무 잦아졌다.
주인 없는 방에 몰래 들어가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은 분명 프라이버시 침해 행위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범위가 제한된다. 반면 사이버 세상에서 행해지는 개인정보 침해는 그 파급 범위가 엄청나다. 특정인의 누드 사진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클릭 한 번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뿌려지지 않는가.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소설 ‘심판’은 자신의 정보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두려워하며 피폐해져 가는 은행원의 모습을 그렸다. 거대조직이 내 정보를 수집하고 내 의사에 반해 사용한다면 ‘나’는 소설 속 은행원처럼 무대책과 나약함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정보는 당사자의 인격권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남의 개인정보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돈벌이에 눈먼 사람들이 저지르는 개인정보 오·남용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린다. 정보화 사회의 그늘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사업자와 이용자 모두 개인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컴퓨터 사용자 개개인은 ‘내 개인정보는 내가 지킨다’는 의지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개인정보는 신성한 비밀이며 재산이자 인격이기 때문이다.
이홍섭 한국정보보호진흥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