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흥행은 하늘만이 안다’고 한다. 개봉 시기나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이변이 속출하기 때문이다. 올해 국내 개봉작들 중에도 ‘대박’이 기대됐지만 참패했거나, 평단의 ‘저주’에도 불구하고 흥행가도를 달린 영화가 있었다. 영화계에선 ‘단 한마디로 내용이 요약될 수 있을 만큼 영화 콘셉트가 단순명료할 것’과 ‘타깃(관객)이 분명할 것’ 등을 흥행의 중요한 열쇠로 꼽는다.》
전국 320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인 ‘어린 신부’(4월 2일 개봉)는 ‘10대용 기획 상품’이 성공한 대표적 케이스. 여고생(문근영)이 멋진 대학생 오빠(김래원)와 결혼한다는 내용을 통해 중고교생 관객을 집중 공략했다. 이 영화는 다수의 중고교생 관객이 중복해서 본 것으로 나타났다. 문근영은 ‘10대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하며 스타로 자리 잡았다.
양동근 주연의 ‘바람의 파이터’(8월 12일 개봉)는 ‘무도인 최배달의 삶으로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전국 240만의 관객을 모으며 성공했다. 방학기 원작의 동명만화가 갖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영화 관람으로 이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 영화는 당초 가수 비를 주연으로 캐스팅했으나 제작사와 주연이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60억원의 총 제작비(마케팅 비용 포함)를 들여 완성됐다. 실존인물의 이야기란 점과 함께 시원한 액션이 대중에게 어필했다고 제작사는 분석하고 있다. 양동근은 ‘마지막 늑대’(4월 1일 개봉)의 흥행 참패 후 이 영화로 체면치레를 했다.
‘뻔한 조폭 코미디’라는 평단의 악평을 딛고 흥행에 성공한 또 다른 작품은 ‘목포는 항구다’(2월 20일 개봉). 제목부터 지역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하고 지방순회 시사회를 집중적으로 갖는 등 지역 마케팅에 집중한 이 영화는 전국 180만 관객이 관람해 당시까지 5개의 출연작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주연배우 차인표를 놀라게 했다. 이 영화는 일반적으로 1 대 2.5 정도인 서울 대 지방 관객 수 비율을 깨고, 1 대 4의 비율을 보이며 지방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반대로 ‘웰 메이드’란 찬사를 들으며 기대에 부풀었던 완성도 높은 영화가 관객에게 싸늘하게 외면당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전도연 박해일 주연의 ‘인어공주’(박흥식 감독·6월 30일 개봉). 어머니의 소녀시절로 시간여행을 떠난 딸이 부모의 사랑과 아픔을 깨닫는다는 판타지 형식의 이 영화는 전국 70만 관객에 머물렀다. 영화가 ‘남녀의 멜로드라마’인지 ‘어머니를 이해하는 최루성 가족 이야기’인지를 분명하게 하지 않은 점이 흥행 실패의 원인인 것으로 제작사는 자체 분석하고 있다. 눈물을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 영화의 세련된 연출방식이 직접적인 감정표현을 선호하는 국내 관객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또 40억원에 가까운 총제작비가 투입된 이성재 주연의 춤 영화 ‘바람의 전설’은 전국 30만 관객에 머물렀다. 배우 이성재의 ‘원 톱’에 대한 관객 호감도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분석.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5월 21일 개봉)도 60억원에 가까운 총제작비를 들인 회심의 작품이지만 전국 58만 관객에 그쳤다. ‘텔 미 썸딩’에 이어 스타일리스트 장윤현 감독이 총제작비 60억원을 들여 5년 만에 내놓은 역작 ‘썸’(10월 22일 개봉)도 11월 첫째 주까지 35만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머무르고 있다. 또 주연배우 권상우 하지원에게 각각 3억원의 개런티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 ‘신부수업’(8월 5일 개봉)은 이른바 ‘흥행 3요소’라고 하는 ‘폭력’ ‘섹스’ ‘욕설’이 없는 ‘무공해 영화’를 표방했으나 전국 120만 관객이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로 끝났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