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역의 스즈키 안
국내 개봉된 일본 실사 영화 가운데 역대 최고 관객 수를 기록한 ‘러브 레터’(전국 130만명·1999년 한국 개봉)의 이와이 온지 감독(41).
그는 ‘러브 레터’ ‘4월 이야기’ 등 감각적인 영상과 감수성이 풍부한 청춘 멜로로 이른바 ‘이와이 미학’이라는 유행어의 주인공이 됐다. ‘스왈로우 테일’ ‘릴리 슈슈의 모든것’ 등 10대의 세계를 어둡게 그린 작품들은 국내에서 미개봉돼 그의 ‘어두운 얼굴’은 아직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17일 개봉하는 ‘하나와 앨리스’는 그의 두 얼굴에서 가장 밝은 지점에 서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0대의 삼각관계와 우정 등 소녀 취향의 감성이 가득한 순정만화에 가깝다. 웃음의 부피는 커졌지만 ‘러브 레터’의 아련한 아픔과 섬세한 영상을 기대한다면 다소 실망스럽다.
어릴 적부터 단짝 여자친구인 고교 1년생 하나(스즈키 안)와 앨리스(아오이 유). 누구도 끼어들 수 없었던 두 사람 사이는 하나가 같은 학교 1년 남자선배인 미야모토(가쿠 도모히로)에게 빠지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어느 날 미야모토가 문에 부딪혀 의식을 잃은 뒤 깨어나자 뒤를 따라다니던 하나는 자신이 여자친구라고 말한다. 하나는 미야모토 선배가 이를 의심하자 앨리스를 미야모토의 헤어진 여자친구라고 소개한다.
앨리스 역의 아오이 유
이와이 감독은 추억과 기억 등 그의 단골 메뉴에 ‘귀여운 거짓말’을 작품의 모티브로 끌어들였다.
“선배 기억상실이야. 나한테 좋아한다고 고백했잖아.”(하나)
“내가 왜 앨리스랑 헤어지고 하나를 사랑하게 됐지.”(미야모토)
“네(하나)가 포기해. 농담이야.”(앨리스)
영화는 세 사람의 이 말로 압축된다. 하나는 첫사랑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미야모토는 거짓말에 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등장한 앨리스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말 그대로 ‘우정출연’한 앨리스는 미야모토에게 끌리지만 우정을 선택한다.
거짓말은 심각한 갈등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미야모토가 기억상실이 아닌 것처럼 사랑은 서로 아는 뻔한 거짓말로 시작된다. 사랑을 위한 거짓말은 용서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2003년 ‘하나의 사랑’ ‘하나의 폭풍-비밀’ 등 상품 홍보를 위해 제작된 이른바 ‘네트 무비’의 오리지널 단편 영화들이 추가 촬영을 통해 장편으로 완성된 것이다. 단편의 주인공은 하나였지만 이번 장편에서는 앨리스에게 카메라의 시선이 집중됐다. 잡지 모델 오디션에 참가한 앨리스가 종이컵과 테이프로 즉석에서 토슈즈를 만들어 신은 뒤 보여주는 발레 독무는 매력적이다.
‘연애사진’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 각각 출연했던 배우 히로세 료코와 오사와 다카오, ‘사무라이 픽션’의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12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