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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철칼럼]한나라, 이렇게 갈 건가

입력 | 2004-11-10 18:29:00


패배는 했지만 미국 대선의 성가를 높인 것은 민주당 존 케리 후보라고 본다. 도전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여실히 보여 주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두고두고 ‘케리의 도전’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대안세력으로서 야당의 역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 보여 주었다. 같은 관점에서 우리에게도 야당의 존재가 어느 때보다 주목되는 시점이다. 새 집권세력이 들어선 이후 과연 나라가 올바로 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잇달아 일면서 한국사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야당은 줄기를 잡는 제몫을 하고 있는가.

▼무력증에 민심 떨어져▼

정당정치의 역동성은 야당이 하기에 달렸다고 본다. 야당의 도전이 얼마나 정교하고 적실성이 있으며 합목적적인가에 따라 정당정치의 품격은 높아지는 법이다. 야당의 위상은 말할 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좌파 정권이라 규탄하고 국정은 엉망이라고 외치는 한나라당은 야당 구실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결과론이지만 한나라당도 국정 난조의 협력자라고 본다. 정권이 무능하다면 한나라당도 무능해진 탓이요, 집권 여당이 무기력하다면 한나라당도 무기력하다는 말이다. 좌파 정권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은 그동안 방관하지는 않았는지도 따져 볼 일이다. 여론조사 결과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는 30%를 밑도는 최저 상황이다. ‘데모할 사람이 1000만명’이란 소리가 왜 나오겠는가. 여기저기에서 피로감과 불안감에 눌려 있는 민생의 실상을 말해 주는 것 아닌가. 지금 국가지도자의 영(令)은 서 있는가. 집권세력이 간판처럼 내세운 개혁정책에 50% 이상이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무슨 뜻이겠는가. 국정이 이런 지경이라면 한나라당의 활동 여지는 그만큼 넓다는 것이요, 기회도 그만큼 많다는 뜻 아닌가. 그럼에도 죽을 쑤고 앉아 되레 끌려가는 형국 아닌가. 집권당이 극적인 효과를 노려 정국 전환을 시도한다면 다시 허겁지겁 따라갈 것인가. 지지도에서 조금 앞섰다 하지만 집권당이 신뢰를 잃은 결과일 뿐, 한나라당은 제자리걸음하는 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의 도전은 실패하고 있다. 근본 원인은 조각조각 나는 전술에만 급급할 뿐, 포괄적인 큰 그림을 보여 주지 못하는 데 있다. ‘4대 악법’을 반대한다지만 ‘자기 것’을 분명하게 내놓지 못했고, ‘개혁 명찰’을 달고 있는 4대 법안의 궁극적 목표가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점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도 못했다. 지금 한나라당의 이미지에는 ‘반대’란 머리띠만 덜렁 걸려 있다. 부시가 케리한테 개별사안의 공방에서는 밀렸지만 ‘도덕적 가치’란 큰 보자기를 꺼내 민심을 크게 묶어서 승리했다는 것은 시사적이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의 권력형 비리를 부각시키는 네거티브 전술에 너무 목을 맸다. 동조하는 민심도 적지 않았지만 더 큰 민심을 사로잡을 만한 희망과 기대감을 주지 못한 것이 전략적 패인이다. 유권자는 과거보다 미래의 삶에 무게를 둔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아직도 패인을 뼈저리게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오늘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설상가상으로 한나라당 집안 사정을 빗대 ‘삼층밥’이라는 말이 나돈다. 정당 내의 다양한 의견은 존중돼야 한다지만, 절제가 병행돼야 하는 법이다. 한나라당엔 그것이 없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갈 건가. 지금이 위기인 줄 왜 모르나. 위기는 밖에도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시장주의를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세력을 자임하는 ‘뉴 라이트 신 보수’가 왜 등장했겠는가. 한나라당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불신이 그대로 표출된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창조적 해체’ 숙고해야▼

때때로 허를 찌르는 반전(反轉)으로 감동을 주면서 기대감을 키워 가는 과정이 바로 정치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변방으로 밀리지 말고 무대의 중앙에 서야 한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라면 간판만 바꿔 달 것이 아니라 ‘창조적 해체’를 숙고할 시점이다. 민심을 퍼 담을 크고 단단한 그릇을 새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빠를수록 좋다. “반성을 모르는 한나라당은 바보 정당이다.” 꼭 하고 싶은 말인데 한나라당 김형오 사무총장이 먼저 하고 말았다.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