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가진 절도 드물지만 그 연못에 누각 든 절은 더 드물다. 연못가 쌍계루 위로 백암산의 가을이 점점 깊어만 간다. -장성=조성하기자
발그레 물든 단풍잎 사이로 하얀 이마 드러낸 백암산(白岩山·741m). 자태 고운 산세의 돋보임은 병풍처럼 뒷받침한 높푸른 가을 하늘 덕이다. 그런데도 이 산은 머리 숙임이 없다. 빳빳이 고개 들고 땅 하늘 호령하듯 기세 또한 막무가내다. 땅에서 태어나 산이 되지 못함을 한탄함이란 하늘에서 태어나 해가 되지 못함을 애통해 함에 비길 만할 터.
산과 절은 두 개가 아니다. 산이 곧 절이요 절이 곧 산이다. 어디 한 번 살펴보라. 절 이름 앞에 늘 산 이름 붙는 것도 같은 이치다. 백암산 백양사가 그렇고 내장산 내장사가 그렇다.
단풍 불이 온 산을 집어삼킬 듯 활활 기세 좋게 타오르는 요즘. 세 살배기 손바닥만 한 애기단풍잎으로 감싸인 백암산 백양사(전남 장성)는 이 가을에 찾을 만한 명산이요 대찰이다. 지는 가을 아쉬워 단풍 숲길 한번 거닐고 싶은 이들. 앞뒤 재지 말고 차를 몰아 남으로 남으로 장성까지 대차게 밟아 볼 일이다.
○ 백양사로 가는 단풍터널
아침 여섯 시. 차가운 새벽공기가 상쾌하다. 수확을 마친 빈 논에 쌓아 둔 짚단이 정겹고 높고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투명한 시야 속의 산과 들이 신선하다.
호남고속도로 백양사나들목을 나서니 장성호 넓은 물이 객을 맞는다. 물가로 난 길은 서울과 목포 사이의 대처를 두루 잇는 1번국도. 빨간 단풍잎 가로수를 보니 백양사가 멀지 않은 듯하다. 백양사 진입로가 이어지는 삼거리. 약수천 물가는 장터처럼 붐빈다. 장성의 명물인 곶감행상이다. 예서부터 일주문, 아니 대웅전까지 길은 단풍나무로 장식된다. 길 양편 나무가 가지를 맞댄 곳은 단풍터널을 이룬다. 그 아래로 단풍 낙엽 길도 열리고.
애기단풍이란 나뭇잎이 작아서라기보다는 나무가 작아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도 키 큰 놈은 엄청나다. 오랜 수령 덕분이다. 이 가을 앙증맞은 애기단풍 몇 잎 주워 책갈피에 보관했다가 틈날 적 편지라도 써서 보냄은 어떠실지.
노송 가지 가로로 누운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을 조금만 걸으면 경내다. 양처럼 하얀 바위가 드러난 백암산이 단풍잎 틈새로 보인다.
○ 산사의 가을은 깊어만 가고
경내 당우가 보일 즘 연못을 지난다. 한여름 흘러넘칠 때는 몰랐는데 물이 줄어든 지금 보니 계곡을 둑으로 막아 만든 연못이다. 그 속에 단풍잎 붉은 빛과 파란 가을 하늘이 들어있다.
계단 연못의 꼭대기. 그 못가엔 멋진 정자 쌍계루가 있다. 명경지수에 비친 쌍계루의 단풍 풍경이 건듯 부는 가을바람에 떨어진 낙엽의 파문으로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연못이 있다면 그 물을 대는 계곡이 있는 법. 그 물골 찾으니 거기에 돌로 지은 홍교가 놓여 있다. 사바사계와 불법의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다. 정교한 조각을 방불케 하는 건축물이다.
다리를 건너면 경내다. 사천왕상 버티고 있는 금강문 안으로 단풍잎 곱게 물든 산을 배경으로 대웅전 등 당우가 다소곳이 자리 잡은 모습이 들어온다. 이 절 당우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약사암이 산 중턱에 보인다. 경내를 어슬렁거리다 공양간 든 선불당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처마에 내걸린 곶감 덕분이었다. 게다가 낙엽이 아무렇게나 쌓인 공양간 앞마당의 고목 아래 놓인 낙엽 쌓인 평상이 당우와 어울린 풍경은 더 좋았다. 산사의 가을은 이렇듯 운치가 있어 좋다.
장성=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 여행정보
▽백양사 단풍 감상=이번 주가 끝이다. ▽찾아가기 △손수운전=호남고속도로∼백양사 나들목∼15번 지방도∼1번국도∼곰재∼장성호∼북하면∼약수천 로터리∼16번 지방도∼백양사 진입로. △버스=서울고속버스터미널 출발. 3시간30분소요. 장성터미널 061-393-2660 △철도(www.barota.com)=무궁화, 새마을호, KTX 장성역 정차. 1544-7788 ▽정보 △장성군청(www.jangseong.jeonnam.kr)=061-390-7224 △백양사(www.baekyangsa.org)=061-392-7502 ▽패키지 투어=13일, 14일 출발하는 당일투어가 있다.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백양사 가는 길에…▼
○주렁주렁 곶감이 익는 마을
전남 장성군 풍기마을에서 땡감을 줄에 묶어 말리는 모습.
가을 풍경에 감을 빼놓을 수 없다. 전남 장성군은 곶감 맛있기로 이름난 곳. 단풍철인 요즘 장성백양곶감 작목반에서는 땡감을 따서 곶감 만드느라 바쁘다.
2층짜리 천막 건조장은 줄줄이 매달린 주황빛 땡감 천지. 개수로 10만개. 따고 깎고 그늘 아래 붙잡아 매어 40일 정도 말리는 게 보통 정성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땡감은 서리를 맞아야 제 맛이 든다. 올 서리 후 곶감 작업에 들어간 것은 지난달 25일경. 이때 널면 25∼30일, 11월에 널면 40일가량 말린다. 그러니 제 맛 든 곶감은 이달 하순에야 나온다. 곶감 만들기는 설 직전까지 계속되는데 얼다 녹기를 반복하며 맛이 좋아진다.
판매가는 1.8kg(50개 안팎)에 2만3000원 선. 알 굵은 선물세트는 지난해 3kg(45∼50개)에 5만원. 택배(착불) 가능. 작목반장 김삼차씨 061-392-6641
○56년 손맛 장삼식당 비빔밥
“이승만 대통령이 나왔을 때(1948년)쯤 식당을 시작했는데….”
허리가 굽어 거동이 불편한 차연주 할머니(83·사진). ‘장삼식당’ 차리고 이제껏 변함없이 비빔밥 내왔지만 올해가 몇 해째인지는 세본 적이 없단다.
식당을 연 지 올해로 56년. 식당 운영은 이제 며느리 몫이지만 아직 손을 놓지 못하는 게 있다. 비빔밥이다. 직접 담근 간장으로 맛을 낸, 씹으면 아삭거리는 깔끔한 나물과 육회가 흰 쌀밥에 소담스럽게 얹혀 나온다.
뚝배기에 시래기 넣고 된장 풀어 질척하게 끓여낸 추어탕도 일품. 고춧잎 무청 무를 불려 빻은 찹쌀에 메주와 고춧가루 넣고 띄운 이 집만의 독특한 ‘집장’도 꼭 맛보자.
○ 식당정보 △찾아가기:장성군청앞 도로(1번국도) 광주방향 50m. 간판이 작아 찾기 힘드니 주의해 살펴보자. △일요일 휴무. 추어탕 5000원, 비빔밥 6000원. 061-393-2003
장성=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