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끼 한 달 간 햄버거만 먹는다면 몸이 어떻게 될까. 모건 스펄룩 감독의 '슈퍼 사이즈 미'는 이런 황당무게한 의문의 답을, 감독 스스로 실천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는 체험적 다큐멘터리다. -사진제공 동숭아트센터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영화가 될 때가 있다. 12일 개봉되는 ‘슈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는 하루 세끼씩 한 달 동안 맥도널드 햄버거만을 먹어가며 자기 몸에 오는 변화를 측정한 체험적 다큐멘터리다. 이 생체실험의 대상을 자임한 모건 스펄록 감독은 비만의 책임을 물어 맥도널드사를 고소한 두 비만 소녀에 관한 뉴스를 TV에서 보다가 이런 황당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영화는 스펄록 자신의 직장에 내시경을 쑤셔 넣는 건강검진 장면으로 시작해 ‘슈퍼사이즈’ 메뉴를 억지로 먹어치우다 토사물을 뱉어내는 모습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스펄록은 참을 수 없이 계속되는 트림, 복통, 방귀, 식은땀을 각각 ‘맥 트림’ ‘맥 복통’ ‘맥 가스’ ‘맥 땀’이라며 비꼰다. “성생활도 예전 같지 않아요. 내가 위에 있지 않으면 금방 지치고 발기도 전만 못해요”라며 불평하는 여자친구의 모습도 담았다. 한 달간의 ‘살신성인’ 끝에 스펄록은 몸무게가 11kg, 혈중 콜레스테롤이 7% 늘어나고 심장마비 가능성이 2배나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슈퍼 사이즈 미’를 둘러싼 호들갑스러운 화젯거리만큼 이 영화가 흥미진진한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올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부문 감독상을 받았고 이후 맥도널드사가 ‘슈퍼사이즈’ 메뉴를 소리 소문 없이 없애는 등의 ‘전공(戰功)’을 거두며 사회를 선동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극장을 나선 직후 패스트푸드라면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 관객을 진절머리 나게 만들진 못하는 것 같다. 이유는 ‘패스트푸드만 먹으면 건강이 나빠진다’는 이 실험의 결론이 예측 가능한데다 도덕적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착한 건 매력이 없다.
‘햄버거를 먹는 데 따른 건강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측정한다’는 이 다큐멘터리의 이야기 패턴은 ‘먹고→건강검진하고→또 먹고→또 건강검진하는’ 동어반복을 불가피하게 했다. 결국 이야기를 새롭게 끌어들이거나 변주해야 할 필요성에 부닥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는 감자튀김과 초콜릿과 이온음료를 ‘건강식품’이라며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학교 급식의 문제점을 찌르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그 외연을 부풀려 나가면서 탈출구를 찾는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부터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가장 큰 이슈를 끌어내려던’ 이 영화의 의도와 매력은 희석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진짜 ‘슈퍼사이즈’가 된 것은 이 98분짜리 영화가 첫 장편이었던 ‘초짜’ 감독 스펄록 자신이다. 6만5000달러(약 7150만원)의 저예산으로 제작된 ‘슈퍼 사이즈 미’는 미국은 물론 유럽 각지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지금까지 2700만달러(약 297억원)의 수입을 거뒀다. 마이클 무어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집중 공격한 반전 다큐멘터리 ‘화씨 9/11’로 대성공을 거둔 이후, ‘1등과 맞짱 떠서 스스로의 몸값을 급속도로 올리는’ 약삭빠르고 선동적인 제작 방식이 다큐멘터리계로 확산되고 있다.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