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2년생 쇼트트랙 국가대표인 변천사. 그의 어머니 강명자씨는 쇼트트랙 초등연맹 회장을 지내고 현재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관계자. 그런 강씨이기에 이번 코치들의 선수 상습 구타 파문이 더욱 충격적이었지만 딸이 이번 사태를 잘 극복하고 성장하기를 바라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1일 오전 9시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 정문 앞.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 변천사(17·신목고 2년)는 한참을 기다린 어머니 강명자씨(64)의 품에 안기며 애써 태연한 척 웃음을 지었다.
“밥은 먹었어?” “응.”
서울 양천구 목동에 있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이 한마디를 나눈 뒤 모녀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엄마, 시간이 아까워.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먼저 말을 꺼낸 쪽은 딸이었다. “오늘만 쉬고 내일부터 모지수 선생님(변천사의 개인코치·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찾아가 열심히 운동할게요.”
“어휴, 그래, 잘 생각했다. 어차피 일은 벌어진 것이고 선수는 어느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야, 알았지?”
강씨는 본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쇼트트랙 여자 대표선수들이 코치들에게 매를 맞으며 훈련해 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억장이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47세에 뒤늦게 얻은 외동딸이 맞은 것도 분하지만 쇼트트랙 초등연맹 회장을 지냈고 지금도 고문을 맡아 연맹 일에 관여하고 있는데도 새카맣게 모르고 있었기 때문.
“어젯밤엔 한잠도 못 잤어요.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요. 어떻게 아이들을 그렇게 때릴 수 있는지….”
강씨는 혹시 딸이 이번 일로 스케이트를 그만두겠다고 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코치들에 대한 원망의 골이 깊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앞섰다. 4세 때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변천사는 리라초등학교-목일중을 거치는 동안 각종 주니어대회를 휩쓸며 두각을 나타낸 ‘꿈나무’ 출신. 2003∼2004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거푸 금메달을 따내며 국가대표팀 부동의 에이스로 떠오른 소중한 딸이 아닌가.
그러나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변천사는 의젓했다. “(선생님들이) 때린 것은 잘못이지만 너희들에게도 잘못이 있어”라는 어머니의 말에 그는 “매맞을 땐 무서웠지만 (선생님) 마음도 그렇진 않다는 걸 알고 있어요. 더 열심히 할게요”라며 오히려 어머니를 위로했다.
변천사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목욕탕에 다녀온 뒤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간다”며 집을 나섰다.
“지상훈련 때 톱밥 위를 뛰다가 왼쪽 발목을 삐끗했대요. 발목이 나을 때까지 며칠 쉬게 하려고 했는데 내일부터 다시 운동하겠다니 그저 기특할 뿐이네요.”
한편 선수 구타 사실이 알려진 뒤 변천사의 인터넷 팬 카페인 ‘달려라 얼음천사(cafe.daum.net/iceangel)’엔 변천사를 격려하는 팬들의 글이 줄을 이었다. 변천사도 11일 무려 6개월 만에 답글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진짜 오랜만에 쓰네요. 컴터할 시간도 없구…. (회원)님들 제가 말 안해두 다 보셨을꺼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쇼트트랙 변함없이 마니 사랑해주시구요. 천사도 마니마니 이뻐해주시고 응원해주실꺼죠? 아자아자∼! 파이팅∼!’
전 창기자 j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