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의 사망 이후 팔레스타인 지도부의 윤곽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라파트 전 수반에 가려 만년 2인자에 머물렀던 마무드 아바스 전 총리가 11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으로 선출돼 1인자로 올라섰다. 최대 정파이자 군사 조직인 파타운동 총재로는 파루크 카두미 PLO 정치국장이 지명됐다.
현 총리인 아메드 쿠레이는 내각 의장직을 계속 유지하면서 팔레스타인은 ‘3두 체제’가 형성됐다. 하지만 60일 이내 선거로 결정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후계 구도=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PLO 사무총장을 맡아 왔던 아바스 전 총리가 PLO 의장직을 맡으면서 ‘정치적 대표주자’로 컴백했다. 그는 40여년간 아라파트 전 수반 옆에서 활약했으며 최근까지도 2인자로 상징적인 지위를 지켜 와 차기 지도자로 일찌감치 점쳐져 왔다.
아라파트 전 수반이 지지기반으로 삼았던 무장 저항조직이었던 ‘알 파타’ 내부에서도 이미 아바스 전 총리를 후계자로 옹립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아바스 신임의장은 1993년 오슬로 평화협상을 탄생시킨 숨은 주역으로 이스라엘과 합리적 타협을 이루어 낼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도 온건파인 아바스 신임의장이 아라파트 전 수반의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를 기대해 왔다.
이번 후계 구도와 관련해 가장 눈길을 끄는 인물은 카두미 신임총재. 그는 11일 파타운동 총재로 지명된 직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나설 용의가 있으나 협상이 실패할 경우 무장투쟁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강온 양면의 투쟁방침을 밝혀 주목된다.
그는 헤즈볼라가 운영하는 알 마나르 TV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저항은 정치적 해결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아라파트 전 수반과 함께 알 파타를 조직했으나 1993년 아바스 당시 총리의 지원으로 체결된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을 강력 반대해 온 강경파 인물. 그러나 줄곧 튀니지에 거주하며 PLO 활동을 계속해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게 단점이다.
쿠레이 총리는 현직을 유지하는 데 그쳤으나 군부 장악능력이 뛰어나 정치적 영향력은 계속 유지할 것으로 외신들은 분석했다. 그는 아라파트 수반이 프랑스 페르시 군병원으로 떠났을 때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내부 13개 무장조직 대표들과 만나 아라파트 수반 사후의 안정을 위한 협력을 담판내기도 했다.
▽합종연횡 권력다툼=오랜 기간 아라파트 전 수반이 독점했던 PLO 의장직과 파타운동 총재직을 2명의 지도자가 나눠가지면서 지도부간 권력다툼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일단 1인자로 아바스 신임의장이 올라서긴 했지만 아라파트 전 수반과 같은 대중적 지지기반이 없다는 게 취약점이 될 수도 있다. 그의 합리적 온건노선에 파타운동의 젊은 군부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변수다. 그렇다면 군사 조직의 수장으로 올라선 카두미 신임총재와의 대립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카두미 신임총재가 쿠레이 총리와 연합해 아바스 신임의장을 거세할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카두미 신임총재는 아라파트 수반이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기 전 병상을 지킨 인물.
결국 60일 이내 선거를 통해 자치정부의 차기 수반이 결정될 때까지 팔레스타인인들은 ‘불안한 힘의 균형’ 속에 지도부의 합종연횡을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