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재선으로 부시의 공화당 체제가 성립됐다.
하지만 부시 정권의 왕조적 성격, 미 일극(一極) 구조 하에서의 제국주의적 세계질서관, 기독교적 가치관 등을 감안하면 ‘체제’보다는 ‘천하’라고 부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부시 천하’인 것이다.
미국을 완전히 둘로 갈라놓은 선거였던 만큼 백악관은 단결하고 차분해질 것을 호소하고 있다. 공화당 온건파 중에는 로널드 레이건 정권이 집권 1기 때 대(對)소련 군비확충에 나섰다가 2기에는 군축으로 돌아서 냉전종식의 바탕을 닦았던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런 호소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민주당원은 많지 않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사상 최다인 5960만표를 얻은 부시 대통령은 350만표 차로 승리해 ‘정통성’을 확보했다. 따라서 집권 2기엔 다수의 신임에 응하는 게 지도자의 임무라는 논리로 밀어붙일 것이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전면에 부각시킴으로써 ‘종교 우익’을 동원하는 선거전술을 성공시켰다. 이 성공사례를 금과옥조로 삼아 2년 후의 중간선거에 임할 것이다.
△지지자, 그중에서도 종교 우익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법원 판사 임명에서 그들을 만족시키는 ‘우(右) 편향’ 인사를 단행할 것이다.
내정에서는 종교 우익, 외교에서는 네오콘(신보수파)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는 경제를 하부구조, 정치와 종교를 상부구조로 규정했지만 부시 천하의 특징은 종교를 하부구조, 정치를 상부구조로 삼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의 전직 상원의원은 8일자 뉴욕타임스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신앙심을 밝히는 것이 공직에 입후보할 때 조건이 되어 왔다. 이런 관행은 국가와 종교를 유착시키고 냄새나는 위선을 유발한다.”
여기에 덧붙여 미국형 민주주의의 보편성에 대한 신념이 이데올로기화하고 있다. 이라크 등 중동 전역을 민주화하려는 네오콘의 구상은 그 전형이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이사장은 공화당의 급진주의(래디컬리즘)에 우려를 표명했다. “민주당이 현상유지 정당인데 비해 부시의 공화당은 현상타파의 급진주의에 기울어 있다. 외교도 그렇다. 지금까지 사용해 온 기구를 버리고 ‘유지연합(有志連合)’을 추진한다.”
그의 지적은 미국이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유엔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경시한 태도에서 확인된다.
이라크 사태가 악화되면 부시 천하엔 손상이 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미국 국민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미 국민은 보다 확실한 가치, 그중에서도 종교에 기울게 될지 모른다. 이번 선거는 그런 역학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네오콘은 서서히 세력을 잃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 우익은 지금보다 더욱 더 부시 천하의 지배기반이 될 것이다.
재정적자와 경상적자가 계속 늘어나도 부시 천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베트남전 부채로 빚어진 달러 쇼크(1971년 닉슨 정권), 군비확충의 결과인 플라자 합의(1985년 레이건 정권)를 보라.
리처드 루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공화)은 “네오콘의 유토피아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외교정책도 돈이 너무 많이 들면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의 공화당 천하라고 해도 하부구조는 지상의 영역인 경제다.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오해하면 천하는 크게 흔들린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