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장학퀴즈에 출연해 이듬해 열린 기 장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규형씨(왼쪽에서 두번째)가 진행을 맡은 차인태 아나운서(왼쪽)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사진제공 이규형씨
“TV 사줄까? 전축 사줄까?”
30년 전 아버지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내게 한 첫 제안은 당시 대부분의 가정이 고민하던 문제였다. 경제성장의 원년으로 접어들던 당시, 어떤 가전제품을 먼저 살까를 정하는 것은 가정의 중대사였던 것이다.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가정은 TV를 먼저 샀지만 나는 “전축 사주세요” 하고 우겼다.
그래서 우리 집은 TV 없이 LP판이 ‘판치게’ 됐다. 싸구려 ‘빽판’ 모으는 재미로 살맛 나던 고교 1년생인 나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사건이 생겼다. ‘장학퀴즈’란 TV 프로그램이 그 원인이었다. 어릴 때부터 퀴즈라면 광적으로 좋아하던 난 TV 사지 않은 것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퀴즈광인 나는 이 프로그램을 TV로 보지 못해 결국 라디오로 들었다. 옆집에 가서 “TV 좀 보여 주세요” 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자존심이 무척 상했다.
온 가족이 전축 앞에 모여 FM 라디오로 장학퀴즈를 들었다. 그런데 라디오로 문제를 듣는 아들이 장학퀴즈에 출연한 ‘선수’들보다 정답을 더 잘 맞히는 게 아버지의 눈에 띄었다. 아버지가 은근히 장학퀴즈 출연을 권유했다.
당시 장학퀴즈의 인기는 요즘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장학퀴즈에서 우승한 학생의 학교는 졸지에 명문고교로 뜰 정도였다.
나는 온 가족의 응원을 받으며 서울 정동 MBC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겨루는 예선을 치렀다. 그날 예심 시험관인 장학퀴즈의 PD가 현재의 MBC 이긍희 사장이었다. 당시 사회자 차인태 아나운서는 28세로 이 프로그램으로 얼굴을 알리고 있었다.
난 라디오밖에 없는 전국 중류 가정의 자존심을 걸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운 좋게도 주 장원, 월 장원이 됐고 기 장원을 다투는 날이 왔다. 드디어 최고 퀴즈왕을 결정하는 마지막 한 문제가 남았다.
“예능 문제입니다. 지금부터 나올 음악의 주인공은 누구를 가리키고 있을까요? 제목 안에 힌트가 있습니다.”
차 아나운서의 문제 제시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자 내 몸은 감전된 듯했다. TV 대신 샀던 전축 FM 라디오에서 여러 번 들었던 오페라 아리아였다. 벨을 눌렀다. 그리고 5초 뒤 이어지는 멘트.
“정답입니다!”
게임 끝. 그때 나는 드디어 장학퀴즈의 기 장원이 됐다는 기쁨보다는 TV를 샀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생각이 앞섰다. 매일 전축 FM을 켜놓고 살지 않았으면 내가 어떻게 저 노래를 알았겠느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우리 집도 TV를 샀다. 라디오에서 TV로 안방의 매체가 급속하게 바뀐 데에는 장학퀴즈도 한몫했던 것 같다.
나는 당시 장학퀴즈 기 장원 출신으로 거의 전무후무하게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영화가 좋아서였고, 결국 영화감독이 됐다.
○영화감독 이규형은
△1957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 졸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어른들은 몰라요’ ‘굿모닝 대통령’ ‘헝그리 베스트 5’의 감독 △‘J·J가 온다’ ‘일본을 읽으면 돈이 보인다’ 등 50여권의 책을 저술하며 일본 대중문화전문가로 활동 △1979년 10·26 사태 때 전방 수색대 체험을 살린 영화 ‘DMZ, 비무장지대’(개봉 26일)의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