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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전 조계종 총무원장 강석주스님 입적

입력 | 2004-11-15 01:38:00

석주 스님이 생전에 글씨를 쓰는 모습. 석주 스님은 서예솜씨도 남달라 틈틈이 써 온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불교 조계종의 선승(禪僧) 1세대로 선맥(禪脈)을 이어오던 강석주(姜昔珠) 스님이 14일 오후 충남 아산시 보문사에서 입적했다. 법랍 81세, 세수 95세.

1971년과 1984년 두 차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맡아 종단의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종단 정화에 큰 업적을 남겼던 스님은 입적 직전까지도 서울 봉은사와 칠보사 조실로 있으면서 한국 불교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다했다.

석주 스님은 돌아가시기 직전 주위에서 열반송을 부탁하자 “따로 말이 필요 있나, 부처님 열반송에 다 나와 있는데. 이미 부처님께서 열반송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석주 스님은 또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는 말도 남겼다.

1909년 경북 안동시 북후면 옹천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은 1923년 남전 스님을 은사로 선학원에 출가한 뒤 1933년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을 졸업했다. 1936년 상원사 한암 스님의 회상(會上)에서 안거했으며 이후 전국 선원을 돌며 정진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 불교의 정통성을 지키는 데 앞장섰으며 광복 이후에는 왜색불교 청산과 불교 중흥에 기여했다.

스님은 1958년 불국사 주지와 1961년 재단법인 선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특히 1965년 서울 삼청동 칠보사에서 불교어린이회를 창립하는 등 어린이 포교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1969년 동국역경원 부원장으로 추대돼 경전의 한글화 사업을 주도했다.

이어 조계종 초대 포교원장, 원로회의 부의장, 동국역경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1994년 종단 개혁 때는 개혁회의 의장을 맡아 ‘한국 현대 불교의 증인’으로도 평가받는다.

석주 스님의 정진을 곁에서 지켜본 다른 스님들은 “천하를 사랑하는 이”(범룡 스님) “안과 밖이 같은 분”(관응 스님) “권위의식이나 사심이 전혀 없으신 분”(도원 스님)으로 회상했다. 특히 한국 불교의 큰 별인 경봉 스님은 40여년 전 석주 스님에게 보낸 편지에서 “마음이 솔직하고 관찰력이 빠르고 바른 말을 잘하는 이”라고 칭찬하기도 했다.

조계종은 석주 스님의 다비장(茶毘葬)을 18일 오전 11시 부산 범어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051-508-3123∼7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