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데 병원장과 주치의가 의견 차이로 치료를 미룬다면 환자의 병만 악화될 것이다.
병원장격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출장길에서 “지금 한국은 재무구조가 가장 든든하고 계속해서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투자 여력도 있다”고 진단했다.
또 “무리하게 주사나 영양제 각성제를 투입하면 반드시 2, 3년 안에 부작용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력이 큰 대기업들이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말하는데 옳지 않다”는 훈계를 덧붙였다.
한국 경제가 꾀병을 부린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하지만 주치의(主治醫)인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2일 내린 진단 결과와 치료법은 다르다.
“체력이 약할 때 감기에 걸리면 해열제나 기침약 등 대증요법을 써야 한다. 이마저 쓰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 상태가 악화돼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해열제와 기침약은 연기금을 동원한 공공시설건설 등 뉴딜적 경기부양책이다. 투입하는 약을 봐선 환자가 꾀병을 부린다고 보기 어렵다.
주치의 진단에 따르면 환자의 체력 저하가 더 심각한 문제다. 외환위기 때부터 최근까지 이런 저런 악재에 시달려온 점을 감안하면 체력이 좋을 리 없다. 특히 현 정부 출범 이후 투자와 소비심리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환자의 재활 의지마저 사라지고 있다. 그 원인은 병원장도 잘 알 것이다.
국제경영개발원(IMD) 등 국내외 경제연구기관들은 올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한국 경제에 대해 일제히 경보음을 울려왔다. 올해와 내년도 성장률이 3∼4%대로 떨어지고 잠재성장률도 하락하며 국가경쟁력 순위도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의료진단기구들이 한국 경제가 체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병도 깊어지고 있다는 데이터를 내놓은 것.
이런 상황에서 주치의가 의료진단기구에 근거한 의견을 내놓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돌팔이’ 의사들은 여전히 “경제가 병에 걸렸다고 떠드는 것은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음모”라며 “환자를 즉시 퇴원시켜 혼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주치의는 병원장을 설득하는 한편 동료 의사와 상의해서 종합 치료에 나서야 한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 아니겠나.
동료 의사가 권유한 치료법은 감기약 외에 두 가지가 더 있다.
우선 의사들이 최근 몇 년간 목이 아프게 권해온 ‘투자심리 회복’과 ‘기업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애덤 스미스 등 거물급 의사들이 300년 동안 일관되게 권해온 처방을 따라야 한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히 뿌리내리는 일이야말로 경제 살리기의 근본 대책이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면 백약이 무효가 된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