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24개의 외국어고등학교(국제고 1개 포함)와 18개의 과학고등학교가 있는데 지금까지 대체로 인문사회계로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우수 학생들이 외국어고에 진학하고 자연과학과 공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이 과학고에 진학해 왔다.
그러나 소규모 학교가 내신에 불리하다는 이유 때문에 한때는 과학고 학생들이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 수년 전부터 과학고 2학년 수료생들이 일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려 그런 문제가 일부나마 해소됐다.
그런 와중에 2005학년도 특수목적고 입시에서 외국어고의 경쟁률이 전년에 비해 40% 줄고 과학고가 30% 증가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외국어고의 경우 동일계 진학 때 주는 가산점 혜택을 ‘어문계열 진학시’로만 한정하는 등 엄격히 적용하다 보니 좋은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하기 위한 징검다리로서의 역할이 없어진 것이다.
과학고의 경우는 ‘좋은 학과’라는 의대나 치대 진학에도 불이익은 없다. 그러나 과학에 소질이 있는 학생은 과학고 졸업 후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앞으로 의학 치의학 전문대학원이 생기면, 대학 졸업 후 다시 의학을 공부할 수 있다. 그때 대학원에 가도 전혀 늦지 않다.
큰 업적을 낸 과학자들은 고교 때부터 과학에 남다른 소질과 관심을 보였다. 금년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프랭크 윌첵은 22세 때인 1973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바로 그 학위논문으로 지도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받았다. 공동수상자인 데이비드 폴리처는 25세 때인 1974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학위논문이 윌첵의 것과 비슷한 것이었고, 그로 인해 노벨상을 받았다.
오스트리아의 볼프강 파울리는 20세 때 과학백과사전에 상대성원리에 관한 긴 글을 썼는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그 글을 읽고 감탄할 정도였다. 파울리는 21세 때 박사 학위를 받았고 28세 때 스위스 취리히공대의 정교수가 되었으며 45세 때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위대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고등학교 때부터 과학에 큰 관심을 가졌고, 평생 과학연구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우수한 학생들은 대학에 조기 입학할 수도 있고, 조기에 졸업할 수도 있어야 한다. 수학의 노벨상격인 필즈상(Fields Medal)을 29세 때 받은 미국의 찰스 페퍼먼은 16세 때 메릴랜드대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학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이 대학에 입학했고 19세 때 프린스턴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1세 때 정교수가 됐다.
대학의 자체 판단으로 우수한 학생을 고교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학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과학의 길에 들어선 학생에게는 평생 과학연구에 종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교육부는 이제 우수한 과학 영재들이 대학에 입학한 뒤 수준 높은 대학교육과 대학원에서의 연구를 통해 세계적인 학자로 커 나갈 수 있게 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의 연구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는 일은 말 그대로 요원할 것이다.
장수영 포항공대 교수·전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