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강도 사기 등을 저지른 범죄자가 순순히 범죄사실을 시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거짓말을 하며 버티다가 결정적 증거가 제시되면 그때서야 마지못해 인정한다. 그러나 사상범은 다르다. 자신의 신념에 따른 행위를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정당성을 떳떳이 주장한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선조들이 그러했다. 사상범의 이런 자세는 좌우를 초월한다.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질서를 폭력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고 선동했다. 이렇듯 사상범은 일반 범죄자와 다른 당당함과 기품을 갖는다.
▼운동권 인사들의 ‘前歷오리발’▼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부분의 한국 좌파 지식인은 일반 범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무원 노조원들에게 ‘주체사상’을 강의해 놓고도 자신은 주사파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김일성주의 청년혁명조직’을 자처했던 반미청년회와 반제청년동맹이 이끌던 전대협의 의장 출신 국회의원이 전대협은 주사파와 무관한 조직이었다고 오리발을 내민다. 재야시절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민중민주주의를 외쳤던 현 정권 고위층 인사들이 ‘방귀 뀐 놈이 오히려 성 낸다’고 좌파라는 지적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이는 한국 좌파가 도덕적으로 파산했음을 의미한다. 6·25 남침을 감행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켜 놓고도 북침이라 우겨대는 김일성-김정일 정권의 비열함과 별반 다를 바 없다. 이 점에서 “우리가 진짜 좌파다”고 한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의 발언은 신선하다. 필자는 노 의원과 함께 한국사회주의노동당 창당준비위원회로까지 발전한 조직에서 활동했었다. 당시 한 조직원은 법정에서 “그렇소. 우리는 사회주의자요”라고 진술해 운동권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바 있다. 필자의 1992년 공개 전향도 이러한 지적 풍토 속에서 나온 것이다.
서구의 지성사를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드러난다. 대표적인 지식인일수록, 그 시대에 강한 영향을 미친 사상적 조류일수록 말 한마디, 글 한 줄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의 어물쩍 자기 합리화는 좀처럼 허용되지 않는다. 변했으면 왜 변했는지, 과거와의 관련성은 어떻게 되는지, 변화에 대한 당사자들의 변(辯)과 실제 내용이 일치하는지 등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엄격히 검증해 지적 성실성을 평가한다. 이 점에서 한국의 ‘자칭 진보’는 민주화 이후 매우 관대한 환경 속에서 살아 왔다. 속은 뻘거면서도 안 그런 척하는 ‘수박 사기술’이 잘 먹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위선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골수 마르크스주의자, 김일성주의자였던 ‘자유주의 486’이 그들의 사기극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그들의 가련한 행위에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해 줄 때, 한국 좌파는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맞는다.
새는 양 날개로 난다. 필자는 ‘우는 옳고 좌는 틀렸다’는 기존 우파(old right)의 논리를 경멸한다. 그런 구닥다리 이분법이야말로 기존 좌파(old left)와의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를 통한 ‘20세기 수구연합’의 자양분이다. 건강한 좌우 날개는 사회의 발전과 성숙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좌우는 공히 혁신돼야 한다. 21세기형 자유주의와 사민주의가 그 대안이다.
▼자기신념 밝힐 ‘뉴레프트’기대▼
요즘 ‘뉴 라이트(New Right)’가 뜨고 있다.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은 “내 눈에는 올드 라이트와 구분이 안 된다”고 했다. 당연한 일이다. ‘20세기 수구연합주의자’의 눈에 새로운 것이 보일 리 없다. 필자는 뉴 라이트와 함께 멋진 경쟁을 펼칠 ‘뉴 레프트(New Left)’의 출현을 대망한다. 그런데 한국 좌파가 그들의 낡은 이념을 수술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바로 도덕성 회복 운동이다.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정치학